김동식이 부채는 최고야!


 전북 전주시 완산구 송정3길 19-7

국가무형문화재 선자장 보유자

김동식


직 업   선자장

입 문   1956

메 일   hapjukseon@naver.com 

운 영   문의 후 방문 / 063-236-4191

#대나무 #한지 #합죽선 #인후동 #가재미마을

만남일_2019.03.20 | 에디터_설지희 | 사진_최정남

만남


김동식 집안은 전주 대표 선자장 집안이다. 외조부 라학천의 합죽선은 고종황제에게 진상될 정도였다. 예부터 전주 부채는 유명했다. 지리적으로 한지와 대나무 마련이 쉽고, 부채를 즐겨 쓰는 선비와 명창이 많기 때문이다.


김동식을 처음 본 것은 국가무형문화재 기록화 영상이었다. 주변이 대나무로 둘러싸인 곳에 앉아 대를 쪼개는 모습이었다. 체형은 다부졌고, 동작에는 주저함이 없었다.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느끼고, 세부적인 것까지 점검하는 그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부채 경력 65년. 삼천동 자택 내 작업공간에서 그의 발자취를 들어보았다.


사람


가재미마을의 옛 풍경은 농한기 무렵 부채를 만드는 모습들이었다. 김동식 자신도 곁에서 과정을 지켜보다 따라 만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외삼촌이 “너 솜씨가 있구나"하고 칭찬한 것을 듣고 뿌듯해진 그는 더 열심히 배우게 되었다.


묵묵히 부채 일을 하던 중 무형문화재 제도를 알게 되었다. 그렇게 경력에 비해 다소 늦은 2007년에 전북무형문화재 제10호 선자장 보유자가 되었다. 그리고 2015년 7월 8일, 국가무형문화재 제128호 선자장 보유자로 인정받았다. 최근에는 국가무형문화재로서 사람들에게 부채를 알리고 있다. 몇 년 사이에 이래저래 고락을 거쳤다.


가장 힘들던 순간은 보증을 서서 여태껏 모은 재산이 모두 사라졌을 때다. 형편이 어려워져 노송동 오두막집으로 이사하였다. 다시 일어서기 위해서 그간 닦아왔던 부채 기술은 전혀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에어컨과 선풍기가 보편화되면서 부채 수요가 급감하였기 때문이다. 1년에 3천, 5천 벌던 시절도 있었지만 정말 옛날이야기가 된 것이다.


어떤 일을 해 볼까 고민하던 찰나, 선배 한 분을 만났다. 다시 부채를 만들어 보라며 현금 4백만 원을 빌려주었다. ‘뭘 믿고 나한테 이렇게 베풀어 줄까.’ 김동식은 그 순간을 잊지 못한다고 말한다. 태산 같은 4백만 원으로 맨땅을 딛고 일어섰다. 그때 그 돈이 지금의 김동식을 있게 한 것이다.


솜씨


예전에는 부채 하나를 만들기 위해 여러 사람이 협력하였다. 대나무를 쪼개는 사람, 낙죽이면 낙죽, 도배면 도배, 광이면 광, 각자의 전문 영역이 나뉘어 있었다. 마을에서 부채를 만들면, 부채를 가져다 파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의 손을 거치던 작업은 오늘날 한두 사람이 모든 과정을 담당하고 있다.


좋은 부채는 부채를 쓰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이다. 어느 날, 손님 한 분이 부채 하나를 사려다가 되돌아갔다. 일주일 뒤에 다시 오더니, 부채 서너 개를 구매하였다. 이후에도 부채가 너무 좋다고 전화가 오기도 했다. 부채를 구입한 사람들로부터 호평하는 연락이 오면 너무 감사하다고 한다. 김동식은 항상 부채를 사 가는 사람들, 간직하는 사람들이 쓰기 좋은 부채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지역


전라감영 선자청이 사라지면서 부채 만드는 장인, 선자장들은 가재미마을과 새터, 석소마을로 터를 옮겼다. 이런 맥락으로 김동식 외가 선자장 집안도 인후동 가재미마을에 정착하였다. 김동식은 1943년 가재미마을에서 태어났다. 


과거를 돌이켜 보면 오늘은 180도 바뀌었다고 한다. 그가 기억하는 어릴 적 가재미마을은 좁은 논두렁길 도로가 전부였다. 그 당시에는 동문사거리가 참으로 큰 도로였다. ‘협신테라'라는 양복점에 잠깐 일하면서 보았던 동문사거리의 제비어머니, 삼양다방, 성실약국 등 선명히 기억한다.


작업실 ‘동성공예'는 자택 내에 있다. 아침부터 밤까지 작업실에 앉아 부채를 만든다. 대나무를 삶고, 말리고, 쪼개는 작업은 옥상에서 진행한다. 대나무가 부채로 변화하는 정교한 작업은 작업실에서 이뤄진다.



인사


세월이 흐른 만큼 예전처럼 일하기는 어렵다. 지금의 목표는 좋은 부채를 많이 만드는 대신, 후손들에게 한국 고유의 부채가 잘 남겨지면 좋겠다고 한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이렇게 기억되길 바란다. “김동식, 그 사람이 만든 부채는 아주 최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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