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기본은 관찰력을 바탕으로 한 그림
전북 전주시 완산길 43
직 업 목조각가
입 문 1971
메 일 carver21@naver.com
운 영 8:30-18:00 (일 휴무)
063-284-4969
#목조각 #조각사 #가구조각 #불교조각
만남일_2020.07.30
에디터_1기 신지혜 | 사진_빛쟁이사진관
만남
차 한 대가 지나갈 수 있는 작은 골목을 지났다. 걷다 보니 색과 길이가 다른 목재가 켜켜이 세워진 조각사가 눈길을 끌었다.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간판에는 ‘세기조각사’라고 적혀있었다. 공간 안쪽 벽에는 제각기 다른 모양의 목조각품이 꽉 채워져 있었다. 가늠할 수 없이 긁히고 닳은 작업대 위로 손때 묻은 조각칼이 한가득 놓여있었다.
1978년 개업한 세기조각사는 조용한 완산동의 한 골목을 지키고 있다. 수많은 조각칼을 거쳐온 조각사 김인천의 삶과 작품에 관해 들어 보았다.
사람
어릴 적 그는 동네 풍경과 동물 그리기를 좋아했다. 전주 곳곳을 돌아다니며 부지런히 그림을 그렸다. 대회에 나가 상을 타기도 했지만, 그림으로 먹고살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청년이 된 그는 그림과는 관계없는 피아노 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어느 날, 가구공장을 다니고 있던 친형이 동생의 그림 실력을 기억하고 목조각 일을 소개했다.
“그림으로 먹고살 생각은 못 하고 서울 수도피아노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했어요. 당시에 우리 형님이 상일가구라는 가구공장에 다니고 있었는데, 어느 날 목조각의 존재를 알려줬어요. ‘동생이 그림에 소질이 있으니까 딱 맞겠다.’ 생각하고 소개를 해 준 거죠. 조각은 간판이나 가구 장식이나 장식용품으로 쓰이는 곳이 많아서 그림보다 실용성이 있으니까 직업으로 삼기에는 조각이 더 낫겠다 싶었죠. 피아노사를 그만두고 1971년 서울 노량진 아랑공예 조각부에 들어가 조각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현재 그는 자기만의 작품을 만드는 데 골몰하고 있다. 김인천은 조각사란 직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림 실력이라 말한다.
“가장 기본은 그림이에요. 뭔가를 만드는 데 관찰력은 기본이 되는 부분이죠.”
솜씨
목조각은 나무를 망치나 자귀 등으로 모양을 잡고, 나무에 문양을 새기는 기술이다. 주로 간판, 불교 조각, 장식품으로 쓰인다. 세기조각사는 개업 초기 주로 가구 장식품으로 쓰이는 조각을 만들었다. 주변 가구공장들이 사라진 후에 들어오는 의뢰는 주로 불교 조각이다. 제작 의뢰가 없을 때 그는 그림을 그려 도안을 짜고 세상에 하나뿐인 작품을 만들곤 한다.
지역
1948년생 김인천은 전주시 효자동에 위치한 서곡에서 나고 자랐다. 그림으로 먹고살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은 그는 친형을 통해 목조각에 입문했다. 1978년 서른, 가구공장과 조각사가 몰려있던 완산동에서 조각사를 개업했다. 약 40년의 세월 속에서 쉼 없이 바쁘던 날, 한없이 조용했던 날을 거쳤다.
“예전에는 완산동에 가구공장이 많았어요. 제일 유명했던 곳은 중앙가구, 협동가구 그리고 태창가구 이렇게 기억에 남네요. 손대패로 직접 물건을 만드는 곳들이었어요. 가구에 들어갈 장식도 직접 조각해서 넣는데, 주로 가까운 데 와서 주문하니까 완산동 근처에 조각사가 몰려 있었죠. 90년대 초반부터 서울에 있는 보루네오, 상일가구 같은 회사가 유명한 메이커가 되고 대형화되면서 이 주변 가구공장들은 다 문을 닫았어요. 가구 장식 주문이 줄어드니까 주변 조각사도 다 문을 닫고 다른 일을 하거나 큰 가구사 직원으로 들어간 거죠.”
인사
목조각을 찾는 이는 많지 않지만, 그는 하고 싶은 일을 지속할 수 있음에 감사함을 느낀다.
“돈을 벌고 못 벌고를 떠나서 내가 할 일이 있다는 거. 그게 행복이죠. 팔에 힘이 없어질 때까지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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