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주 구이면

계속 생각나는 건 대금 밖에 없었어요

국가무형문화재 대금산조 이수자 정재민


직 업   대금연주자

운 영   문의 / 010-8468-6980




#독주 #교통사고 #모악산 #치와와 #완주

만남일_2020.09.24

에디터_설지희 | 사진_빛쟁이사진관

계속 생각나는 건 대금 밖에 없었어요

국가무형문화재 대금산조 이수자

정재민


직 업   대금연주자

입 문   2001

운 영   문의 후 방문 / 010-8468-6980

#독주 #교통사고 #모악산 #치와와 #완주군

만남일_2020.09.24 | 에디터_설지희 | 사진_빛쟁이사진관

만남


정재민 이수자와의 만남은 국가무형문화재 가야금산조 및 병창 김혜련 이수자의 소개를 통해서였다. 정재민은 국가무형문화재 이생강류 대금산조 이수자이자 전북무형문화재 전라삼현육각 전수자이다. 인터뷰를 제안하면서 그와 연관된 장소에서 만나자고 했다. 그가 알려준 도로명 주소는 모악산 입구였다. 알고 보니 어머니가 운영하는 한식당이었다.


그를 기다리던 중에 토종닭이 인도에 돌아다니길래 어떤 주인 분이 이렇게 자유롭게 닭을 풀어놓은 건가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어머니의 닭들이었다. 정재민 어머니는 밝고 명랑한 소녀 같으면서 강단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정재민의 삶 속에서 어머니의 지분이 참 많다. 그가 데려온 치와와 머머를 내 무릎에 앉힌 채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사람


처음 그가 목관악기를 잡은 것은 초등학교 때의 일이다. 취미로 단소를 불고, 가르치던 담임 선생님의 칭찬에서 시작되었다. 그때는 손이 작아 바로 대금을 잡지는 못했다. 소금이나 단소로 대회도 나갔다. 중학교로 진학한 이후에는 CA 시간에 대금을 배웠다. 마침 학교에 대금 선생님이 계신 덕이었다. 부모님은 그냥 공부를 계속하라고 하셨지만 정재민의 마음은 달랐다. 대금으로 전통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싶었다. 


“중학교 3학년 때 아버지가 ‘너 음악 하면 행복하겠냐’고 물었어요. 저는 ‘행복합니다’라고 답했고요. 그때 허락해 주셨어요.”


2016년에 졸업하고 전남도립국악원 비상임단원으로 근무하면서 수많은 공연을 경험했다고 한다. 독주도 해 보고 다양한 협연도 해 보고 참으로 바쁘면서도 즐거웠던 시기였다. 그는 자신의 첫 독주회 기분을 잊지 못한다고 전했다.


솜씨


전통고 입시를 준비하던 때부터 이생강 선생님의 음악을 많이 들었다. 자주 듣다 보니 자연히 와닿았다. 당시 레슨 선생님이 국가무형문화재 제45호 대금산조 이생강 보유자의 제자 이항윤 선생님이었다. 레슨을 받다 보니 이생강 선생님께 직접 가르침을 받을 수 있었다.


여타 국악 전공 친구들보다 시작이 늦은 편이었다. 그 간극을 없애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그렇게 차곡차곡 실력을 쌓아오던 그의 경력이 순탄하게 만들어진 것은 아니었다. 24살, 군대를 막 전역하고 자동차 사고를 크게 당했다. 그 사고로 턱을 크게 다쳐 아랫입술 감각을 잃었다. 대금을 불어봐도 소리가 나지 않았다. 결국, 대금을 포기한다는 마음으로 1년의 공백기를 가졌다.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고, 막막하던 차에 기회가 찾아왔다.


“이수자 시험을 보겠냐는 연락이 왔어요. 저는 시험을 보겠다고 했고요. 그때 다시 대금을 불어봤는데 소리가 나더라고요. 그렇게 연습해서 2014년도에 이수자 시험을 봤어요. 그냥 너무 좋더라고요.”


감사한 사람으로 이생강 선생님과 이항윤 선생님을 꼽았다.


“이생강 선생님은 굉장히 인자하신 할아버지 같아요. 항상 뭐든지 알려주려고 하시고 너무 감사하죠. 정말 많은 걸 배운 거 같아요. 그리고 저를 가르쳐주신 이항윤 선생님은 저에게 아버지 같은 존재예요. 어릴 적부터 저를 봐주시고, 제가 겸손할 수 있게끔 항상 잡아주시죠.”

지역


익산에서 태어났고, 전주와 완주를 오가며 자랐다. 어린 시절의 기억 대부분은 완주군 화산면에 있다. 시냇가에서 물고기나 가재를 잡고 놀던 기억이 있는 활달한 성격의 아이였다고 말한다.


“그때는 친구들이랑 같이 시냇가 가서 팬티만 입고 놀았어요. 물고기 잡고, 가재 잡고. 바로 앞에 천이 있었어요.”


전주는 여러 번 와서 살았다. 아주 어렸을 때는 삼천동, 중학생 때는 인후동에서 지냈다. 지금은 가족과 독립하여 서신동에 지낸다고 한다. 그에게 어머니는 모든 걸 다 해 주는 분이다. 항상 자신의 일을 이해해 주고 응원해 준다고 한다.



인사


그와 인터뷰한 날은 9월 24일. 그의 생일이었다. 자신의 생일에 자신이 지나온 길을 담담히 읊어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대금을 부를 때 당찬 모습을 보면, 교통사고 직후 공백기가 도저히 상상되지 않는다. 끝이 보이지 않았을 동굴을 지나온 그의 단단함을 느낀 날이었다.


정재민과 인터뷰 시간은 다른 날보다 조금 더 즐거웠다. 작고 소중한 머머와 함께했기 때문이다. 귀여운 만큼 얌전한 친구였다. 어디를 가나 머머와 함께 다닌다는 그의 이야기에서 다정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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