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그는 꽤 많은 지역을 돌아다녔다. 전주 송천동에 살다가 아버지의 발령으로 경남 삼천포에서 초등학교를 보냈다. 초등학교 CA에서 처음으로 농악을 접했다. 삼천포에 5년을 있다가 다시 전주로 돌아왔다. 대학생이었을 때 신시가지로 이사했다. 연희를 더 배우고 싶어 서울로 올라갔다. 그곳에서 대학원 생활도 직장 생활도 보냈다.
“서울에 거의 6, 7년 정도 살았어요. 사물놀이를 배우다 알게 된 형님을 따라다녔죠. 덕수궁에서 취대타도 해 보고, 정동극장에서 인턴으로 들어가 정사원으로 근무도 했어요. 그러다가 더 배워야 한다는 생각에 2018년에 중앙대학교 대학원에 들어갔어요.”
인사
이리농악을 깊이 있게 고민하고 싶어 대학원을 들어갔다. 어떻게 하면 가락을 남길 수 있을까. 그는 2006년에 작고하신 故 박용택 상쇠의 가락을 분석하고 채보하였다. 그 시간을 통해 15년을 몸담은 이리농악의 깊이를 더 알고자 하는 욕구가 피어난다고 말한다. 그의 목표는 사람들에게 농악이 즐거운 놀이와 삶으로 단단히 자리하는 것이다.
“과거 농악하면 데모나 시위할 때 사용하는 장르라는 인식이 있잖아요. 사실 농악은 농악다운 맛이 있는데 말이죠. 앞으로 저희의 몫은, 교육적으로나 제도적으로나 농악을 경험하고 즐길 수 있는 더 나은 환경들을 만들어 주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