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너, 우리라는 소통법


 전북 전주시 완산구 동문길 115-5 문화공간울림 3층

국가무형문화재 임실필봉농악 이수자

고정석


직 업   전통타악연주자(장구)

입 문   1998

메 일   shoidolli@hanmail.net

SNS   @shoidolli

운 영   문의 후 방문

#임실 #필봉마을 #장구 #루어낚시 #아들

만남일_2020.09.10 | 에디터_설지희 | 사진_빛쟁이사진관

만남


문화통신사 김지훈 대표님을 통해 임실필봉농악 고정석 이수자를 알게 되었다. 당시 나는 ‘이수자썰’을 함께 할 예능 종사자를 찾고 있었다. 내 머릿속 기획을 어설프게 풀어내어 급하게 기획서를 만들어 보냈다. 고정석 이수자는 그렇게 이어진 첫 인연이었다. 


농악은 전통사회를 대표하는 퍼레이드이자 의식이다. 마을마다 크고 작은 농악이 이뤄졌고, 지역마다 사투리가 있듯이 지역별 농악의 생김새는 다르다. 농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나, 너, 우리'를 연결하는 역동적 소통이라는 것. 카페 기린토월에서 처음 만난 그에게서 배운 것이다.


사람


고향은 서울 상계동이다. 지금은 농악을 하는 예능인이지만 어릴 적에는 나무를 깎아 조선검이나 비행기를 만들어 놀곤 하였다. 요즘은 풍물패에서 장구, 가정에서 아빠, 취미는 루어낚시이다. 한동안 사무와 공연일로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다가 여유를 찾기 위해 다시 낚싯대를 잡았다. 최근에는 아들과 함께 낚시하는 게 큰 낙이다.


 “일상 속에서 힐링하죠. 아빠로서 채울 수 있는 것은 뭐든 해 주고 싶어요.”


서울 사람 고정석이 전주 사람이 된 것은 본격적으로 농악을 시작한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였다. 원광대학교 국악과를 나왔고, 자연스럽게 임실필봉농악의 길을 걷고 있다. 


솜씨


고등학교 2학년 때 농악을 전공하기로 결심했다. 주무시고 계신 아버지를 깨웠다. “아버지, 저 농악을 전공하겠습니다.” 아버지는 “후회 안 할 자신 있냐?”고 물었다. 고정석은 대번에 “후회 안 할 자신 있다”고 말했다. 그날 아버지의 질문은 지금껏 자신의 삶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 


농악은 엄청난 체력이 요구된다. 한 예로 정월 대보름날 굿을 하면 아침 10시에 시작해서 저녁 12시까지 공연하기도 하고, 하루에 4, 5번 할 때도 있다. 아이들을 위한 3박 4일 농악 체험 프로그램도 있다. 숙박하면서 공연도 보고, 직접 뛰고 돌며 온몸으로 경험해 본다. 흥이 중요한 종목답게 어느 순간 아이들이 스스로 즐기며 계속 뛰고 돌며 연습한다. 


요즘의 고민은 ‘이 즐거움을 어떻게 전승과 연결할 수 있는가’이다. 선배들이 이끌어 주고, 다음 세대가 향유할 방법을 고민한다. 

지역


고등학교 1학년 여름방학, 의형제처럼 지내던 중학교 친구를 따라 우연히 임실필봉농악을 접했다. 남원 주생면 폐교에서 일주일간 농악 전수 교육을 받았다. 자신을 포함한 고등학생 3명과 서울대학교 풍물패 ‘물풍선' 동아리와 부대끼며 지냈다.


“교실 하나를 나눠서 방 2개를 만들었어요. 한 교실에서 한 13명이 같이 지낸 거지. 전수 교육을 받으려면 악기랑 각자의 먹을 것을 가져와야 했어요. 근데 고등학생인 우리가 가져온 걸 다 모아보니 4일 겨우 먹게 생긴 거예요. 어쩌지, 어쩌지 하고 있었죠. 근데 거기에 서울대 물풍선이라고 하는 풍물패 동아리가 있었어요. 그분들한테 가서 도움을 청했죠. 저희가 가진 식량을 다 드릴 테니, 우리 좀 먹여 살려 달라. 그리고 우리가 설거지며 잡일을 다 하겠다. 그렇게 해서 첫 전수를 마쳤어요.”



인사


농악을 즐기고 있지만 고민도 많다. 음악이 가지는 현실적 어려움에 부딪혀 그만두는 친구들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서른 살 언저리에 많이 포기해요. 생활이 전혀 안 되니까요. 연희 종목 자체가 힘든 것도 있겠죠.”


기예능 구분 없이 전승에 관하여 고민한다. 지켜야 한다는 마음은 가득한데, 동료를 만나는 게 여간 쉽지 않다. 나, 너, 우리가 뭉치는 즐거움을 모두가 나눌 수 있기를 소소하고도 큰 꿈을 그린다.

저작권자 © 프롬히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