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1976년생 김대성의 본적은 전주 인후동이다. 꼬마 김대성은 산이고, 냇가고 온 동네를 놀러 다녔다. 산에 올라가서는 개구리를 잡아서 줄줄이 꼬챙이로 만들어 구워 먹기도 하고, 냇가에서 놀기 위해 굳이 고무신을 신고 등교하기도 했다.
집은 전형적인 대가족이었다. 조부모님, 시집 안 간 고모와 함께 살았다. 그 외에도 동네 자체가 아버지 외가 동네인 ‘라씨 부락’이었다. 할아버지가 환갑잔치 때 140평 마당이 꽉 찰 정도의 친지들이 모이기도 했다. 동네 자체가 모두 가족들이었다.
“버스 승강장에서 부락 가는 길에 우리 집이 있었어요. 친척들이 항상 우리 집에 들러 밥 먹고 갔어요. 그래서 어쩔 때는 어머니가 밥을 7번, 8번 차리고 했죠. 어머니가 엄청 고생하셨죠.”
인사
요즘 들어 자신을 종종 돌아보고 있다고 한다. 자신이 아버지에게 보이는 모습. 자신이 자식들에게 보이는 모습. 아버지가 되어서야 비로소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는 걸까. 아버지는 참으로 칭찬에 인색한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어느새 아들에게 똑같이 대하는 자신을 마주하곤 한다.
나는 이 일을 잘하고 있는가. 전통 기술에 대한 아버지의 깊이를 잘 따라가고 있는가. 이런저런 고민을 하며 더욱 겉치레를 버리고, 실력에 몰입한다. 아버지 김동식이 그렇게 하기 때문에 자신도 그렇게 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