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최동식은 장수군 계남면 고정마을에서 4남매 중 막둥이로 자랐다. 고정마을은 최씨 집안 종손들이 30부락 가량 모여 사는 집성촌이다. 산골 마을이었지만 가끔 예인, 소리꾼들이 방문하여 신파극을 펼치는 모습을 보며 ‘소리가 참 좋구나’라고 생각했다.
스물다섯 어느 날, 판매직 최동식은 김광주 선생님이 현악기용 명주실을 꼬는 모습을 보았다. 바짝 당겨가며 줄을 힘들게 감고 있었다. 최동식은 작업이 수월하도록 지지대를 대어 보았다. 그 모습을 보고 김광주는 말했다. “너 일 배워봐라.” 그렇게 최동식은 스승 김광주 선생님의 태평동 자택에서 기술을 연마하기 시작했다.
“중앙시장 뒤편, 지금은 아파트 있는데 예전에 전매청이 있었거든, 담배 만들던 곳. 그 뒷골목에 살았어요. 거기 틈틈이 가서 어깨너머로 배웠죠.”
인사
전북무형유산이 되는 과정도 어려웠지만 그 이후도 순탄치는 않았다. 어떤 기관에서 시연을 부탁받고 보름 만에 준비하여 올라갔지만 국가무형문유산이 아니라는 이유로 다시 돌아가라는 답변을 받은 적도 있었다. 존중이 없었던 것은 아니겠으나, 이런 크고 작은 대우들이 쌓이다 보니 가족들도 함께 힘들어했다. 그럼에도 악기장을 잇겠다는 신념을 간직하고 있다.
“그때 화가 많이 났었죠. 내가 64년도부터 계속했는데 무시하니까 울화통이 터질 때가 많이 생기더라고요. 이제는 자식들 다 아버지 이제 쉬셔도 된다고 하는데, 나는 무형유산으로서 악기 만드는 일을 계속하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