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이라는 질문과 답

전북무형문화재 옻칠장 이수자

이선주


직 업   옻칠장

입 문   1996

메 일   seonjoo57@naver.com

운 영   문의 후 방문

#전통 #옻칠 #일본유학 #골동품 #보존처리

만남일_2020.09.16 | 에디터_설지희 | 사진_빛쟁이사진관

만남


이선주 선생님은 나의 동 대학교 선배님이다. 교내에서 뵌 적은 없지만 이름은 익숙하였다. 그러다 2016년에 부친이신 옻칠장 이의식 보유자의 전주 공방을 방문하였다. 언뜻 봐도 세월을 느낄 수 있는 도구들과 목칠기들이 쌓여 있었다. 


옻칠은 색감이 우아하고 기법이 화려해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공예 중 하나이다. 그렇다고 바로 배우기에는 겁이 난다. 일일이 자개를 오려내고, 칠과 건조를 반복하는 등 손이 많이 간다. 피부에 옻이라도 오르면 대체로 병원행이다. 이선주는 옻을 곁에 두는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나 그런지 옻을 타지 않는다. 늘 칠기를 보고 자라서인지 안목과 솜씨가 탁월하다. 이선주, 그의 이야기를 듣는다.


사람


이선주는 스스로를 금방 질려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렇기에 옻칠이 좋다고 말한다. 나전칠기, 채화칠기 등 옻칠기법이 다양하기 때문이다. 옻칠공예를 하기 위해서는 배워야 할 게 끝이 없다. 아직 연구해야 할 기법들도 많고, 다뤄야 할 재료도 많다. 


제대로 옻칠을 한다면 무엇을 배워야 할까? 가장 먼저 고민한 것은 ‘전통이란 무엇인가’ 였다. 전통이라는 질문 뒤에는 실질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기술들이 필요했다.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한국전통문화대학교가 생겼다. 그렇게 전통회화, 수리 보존(복원), 목재, 건축. 다양한 것들을 배울 수 있었고, 지금까지 이 일을 할 수 있었다는 그의 너스레가 대단하다. 


솜씨


어릴 적부터 놀이터는 아버지의 공방이었다. 한창때에는 4~5명 정도 삼촌들이 계셨고, 늘상 작업하는 모습을 구경하였다. 옻칠 일을 시작한 것은 고등학생 시절, 마감이 바빴던 아버지의 일손을 돕기 시작하면서이다. 고등학교를 이과로 갔고, 대학도 자연계열로 진학하였다. 그러나 아버지 일손을 도울 때가 훨씬 재밌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결국 아버지 일을 이어받아 공부해 보자고 다짐하였다.


“적성에도 맞다 싶어서 이걸 계속해야 겠다고 마음먹었죠. 그게 쭉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일본 유학으로 이어진 것 같아요. 계속 더 공부할 수 있는 학교에 가고 싶었거든요.”

지역


한국전통문화대학교에 다니던 중 한 학기가량 일본에 갈 수 있는 제도가 있었다. 그게 인연이 되어 일본 교토조형예술대학교에서 10년가량 유학했다. 교토와 전주는 무척 닮아있었다.


“교토는 하천이 흐르고 조용한 도시라고 생각해요. 가만히 걷기 좋고 걷다 보면 있을 건 다 있고. 전시도 보러 다니고, 골동품점도 구경 다니고 하면서 열심히 공부한 것 같아요.”


어느 날은 교토 시내를 지나다 우연히 교수님을 뵈었다. 골동품을 보러 간다는 교수님 말을 듣고 따라갔다. 골동품상에서는 쉽게 보기 어려운 옛 물건들이 많았다. 이전부터도 수리보존을 하고 있었으나, 이때의 경험이 큰 계기가 되어 본격적으로 보존처리 일을 하였다.



인사


전통을 크게 보존과 활용으로 구분한다면 이선주 자신의 성향은 보존이 더 맞는 듯하다. 그러나 출강을 나가는 지금. 전통의 내일을 그리는 것도 후학을 위한 자신의 몫이라고 말한다. 깊은 탄탄함 위에 새로운 것을 만드는 맛이 전통이라 설명하였다.


이선주는 이것저것 배웠고 그것은 모두 옻칠로 이어져 있다. 전통과 새로움 사이의 적당한 지점을 찾기 위해 고심 중이다.


“전통은 전통대로 살리면서 새로운 것을 하고 싶어요. 최근에는 벽화를 그려봤어요. 이런 저를 보고 한편에서는 좋은 기술을 가지고 왜 벽화를 그리느냐고 하시는 분들도 있었고요. 저는 새로운 도전이라고 생각했는데 말이에요. 아마 앞으로도 꾸준히 절충점을 잘 찾아 나가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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