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사실은 돈이 없어서 내려왔어요. 전주가 고향이기도 하니까 편하고요. 문화적 토양도 활동하기에 나쁘지 않아요. 도시와 자연 구조가 좋으니 마음이 안정되는 측면도 있죠. 서울은 너무 바빠요. 많은 이가 그렇듯 서울에서 살 때는 너무 피폐하고 버티기 힘들었어요. 전주는 문화적으로 풍요롭다고 하는 도시니 괜찮은 도시라고 생각하기도 했고요. 물론 불편하거나 부족한 것도 있죠. 시장이 작으니 재료를 구하기가 힘들어요. 유통 시장도 작고요. 그러니 예술인에게 지속성을 담보하기는 어렵죠. 필요한 물건을 구하려면 저리 가야하고 소비자 숫자가 적으니 도시로 나가기도 해야 하고요.
전주로 내려왔을 때 사실 전주에서는 93년도. 동학 100주년 사업하던 쯤이니까. 그때 지역 민중미술 단체에 들바람, 갑오세 사람들, 선배님들이 있었어요. 저도 동학 100주년 사업을 참여하게 되고 그러면서 개별 소모임 단체로 있지 말고 연합하자고 제안하고 그걸 주도적으로 진행하면서 전북미술인협회를 만들고 초대 사무국장을 했죠. 덕분에 지역사회에서도 민중미술가라고 한 것 같아요. 싫은 건 아니지만 오히려 평생 하신 분들이나 운동 열심히 한 분들에 비해 전 아니라고 생각해요. 어쨌든 전 그냥 화가. 판화가도 아니고 미술가, 화가라는 말이 좋거든요.
인사
당장 발 앞에 놓인 일들에 치여 작품 활동은 접고 지낸 지가 오래. 촛불을 계기로 다시 조각칼을 집었을 때 유 작가는 모처럼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고민했습니다. 현실에서 판화를 그리고 그 판 위에 다시 현실을 그리는 유대수 작가. 어제와 오늘의 일상이 다르듯이 그의 작품도 오늘에 머무르지 않고 내일로 향해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