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를 예술로 말하다
전북 전주시 완산구 물왕멀2길 9
#배우다컴퍼니 #연출가 #당당이 #미투그후
만남일_2021.04.21 | 에디터_1기 최아현 | 사진_최정남
만남
2020년 연출가로 송원을 처음 만났다. ‘에이~ 이거 예술이에요’ 사업을 통해 4명의 다른 예술인과 함께 공동작업을 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일면식도 없는 사이였지만 기획 의도를 듣고 참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함께 한 작업이 인연이 되었고, 소신 있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떠올렸을 때 자연스레 그를 떠올렸다.
봄비가 오기 직전의 따뜻한 봄바람과 함께 방문한 적 있는 그의 사무실로 걸음을 옮겼다. 공간과 관련된 지원사업에 선정되었지만, 아직 전북여성문화예술인연대만의 사무실을 얻기 전이었다. 2014년부터 운영한 그의 ‘배우다컴퍼니’ 사무실을 찾았다. 줄곧 전주에서 살았고, 연출가이자 활동가로 사는 송원을 만났다.
사람
87년생 송원입니다. 직업은 프로N잡러에요. 지금은 예술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장 크게 가지고 있어요. 강의도 하고, 성희롱ㆍ성폭력 예방 강사도 하고, 기획도 하고요. 틈나는 대로 공연 관련한 일도 하고 있어요. 뭐든 오면 일단 다 하고 있습니다.
저를 발견하는 걸 계속하는 사람인 것 같아요. 저는 일단 자문자답하면서 실행해보는 타입이에요. 정답인지 아닌지는 둘째라고 생각해요. 일단 내가 지금 필요하다고 느낀다면 실행해봐야 한다고 느껴요. 무언가를 만들어내야 하는데 질문이 없으면 답할 수 없죠. 그러니 질문을 직접 만드는 수밖에요. 영감을 주는 첫째는 동료들과 저의 삶이에요. ‘우리가 어떤 지점이 불편했지?’, ‘어떤 것을 발견했지?’, ‘어떻게 살아야 하지?’ 이런 질문에서 출발해요. 그래서 결국 ‘내가 어떤 사회적 가치를 지향해야 할까?’로 고민이 이어지는 것 같아요. 묻는 방식이기도 하고, 답하는 방식이기도 하면서요.
활동가로서 가장 주된 마음가짐은 사명감인 것 같아요. 사실 이건 안 할 수 있다면 언제든 그만두고 싶어요. 품은 품대로 들잖아요. 그런데 저는 다른 사람의 품도 받아봤어요. 내가 받은 위드유(with you)를 기억하잖아요. 그래서 자주 생각하는 두 문장이 있어요. ‘용기는 근육과 같다’라는 말이에요. 근육은 자주 쓸수록 강해지잖아요. 용기도 마찬가지라는 이야기요. 또 ‘우리는 서로의 용기다’라는 말도 좋아하고요. 용기와 관련된 문장을 마음에 품고 있는 것 같아요. 연대와 실행력 두 가지를 모두 가지고 갈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솜씨
최근에는 선미촌 공간 사업에 선정됐어요. 그곳의 빈 업소를 사용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우리가 꼭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선미촌 여성의 서사를 계속 기억하고, 예술로 만들고, 나눌 사람들이 올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모일 공간이 없는 예술인들이 쉽게 모이는 그런 공간이 됐으면 해요. 무엇보다 전북여성문화예술인연대의 공간에 방문하는 사람들이 안전하다는 감각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제가 예술을 하면서 어느 공간에 가도 ‘안전한 상태다’, ‘불편하지 않다’ 이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거든요. 그 이후에는 각자의 몫대로 하시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다들 알아서 자유롭게 꿈꾸셨으면 좋겠어요.
대부분의 업무는 수행하는 사업들에 대한 서류 작업을 해요. 마감 기한을 맞추고, 지원하고, 기획하고 하는 것들이요. 최근에는 페미니즘 연극제에 가장 심혈을 기울이고 있어요. 배우다 컴퍼니 통해서 진행하는 사업인데 제가 배우로 들어가기도 하고, 공동 창작이기도 해서요. 서울 대학로에서 공연할 예정이에요.
지역
전주 토박이예요. 완산구 한옥마을, 남부시장 이쪽에서 계속 자랐어요. 초등학교는 중앙국민학교를 다녔어요. 예전에는 원래 중앙국민학교가 경기전 자리에 있었어요. 제가 4학년 때 지금의 자리로 이사했고, 학교 자리에는 경기전이 생겼죠. 남부시장에 송약국이라는 곳이 있었어요. 저희 할아버지가 하는 곳이었고요. 할아버지, 엄마랑 아빠, 저까지 3대가 그 집을 살았어요.
전북여성문화예술인연대를 시작한 건 지역 자체가 좋아서도 있지만, 동료들이 자꾸만 떠나가기 시작해서였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여기가 좋고, 여기서 예술 활동을 하고 싶은데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해낼 수는 없을 것 같았어요. 전주를 떠나지 않고 예술을 하려면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보통 지역이라고 하면 작고 폐쇄적일 것 같다는 인상이 있죠. 성폭력을 예로 들자면 폐쇄성과 지역 내의 연결성이 더해져서 피해자의 입을 다물게 하는 결속력이 있잖아요. 이상적이긴 하지만 이게 가해자를 향하게 할 수 있다고도 생각해요. 연결되어 있다는 말은 다시 가해자가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모두가 감시할 수 있다는 말 같거든요. 우리가 서로 연결되어서 더 나은 가치를 향할 때 지치지 않는 원동력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여기서 파이를 누가 더 갖냐 마냐’ 하는 싸움을 할 게 아니라, ‘우리 같이 이곳을 바꿔보자’, ‘공동체성을 회복해보자’가 되면 좋겠어요.
인사
인터뷰 내내 송원의 반려견 당당이가 곁을 지켰다. 유기견이지만 당당하게 살아가자는 뜻으로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내내 그와 동시대, 같은 지역을 살아가고 애정하는 예술인으로서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와 함께 오래도록 단단하고 안전한 꿈을 꾸고 싶다.
* me too 운동 당시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연대한다는 의미의 슬로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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