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어릴 적 최잔디는 ‘노래 잘하는 아이’로 유명했다. 어디서든 노래를 하면 용돈을 받곤 했다는 그. 그 뒤로 쭉 노래하는 삶을 살 것이라고 확신했다. 어머니는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실력과 지원이 더해지니 승승장구하였다. 국립국악고등학교를 다녔고, 한국예술종합학교를 입학하였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다 이뻐하니까 ‘나 잘하는 사람인가보다’ 그랬죠. 되돌아보면 이기적인 꼬마였던 거 같아요.”
과거 자신을 ‘이기적’이라고 서술한 이유는 스무 살을 전후로 삶이 크게 전환되었기 때문이다. 한예종 입학 이후 집안의 가세가 급격하게 기울었다. 어머니는 집안 사정을 미루다 미루다 털어놓고, 영화 〈기생충〉에 등장한 반지하 같은 곳으로 이사하였다. 가구는 물론 평생을 간직하고 싶었던 피아노까지 팔아치웠다. 무엇보다 노래하고, 공연하는 데 드는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학교도 안 나가고 시험도 치지 못했다. 그 시기를 거치면서 자신의 어린 시절이 얼마나 이기적이었는지 되돌아보았다.
그렇게 20대의 8년이 사라졌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도 하고, 보컬트레이너도 하며 일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배가 너무 아파 병원에 가보니 몸에 커다란 혹이 생겼다. 응급수술을 하고 회복을 위해 걸어 다니던 참이었다.
“아프지만 폴대를 끌고 1층에 내려왔는데, TV에서 〈국악한마당〉을 하고 있었어요. 그때 남도민요를 부르고 있는 사람을 보면서 만감이 교차하더라고요. ‘소리를 너무 하고 싶다. 안 하면 안 될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면서 저도 모르게 눈물이 났어요. ‘안 되겠다. 다시 시작해 보자.’하고 퇴원하자마자 학교에 재입학 서류를 제출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