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1959년, 충남 부여 출생으로 7남 2녀 중 셋째입니다. 부여는 어릴 적에만 살았고, 전라도나 경상도에서도 조금씩 살다가 서울에 자리 잡았어요. 아버지가 조경 일을 하면서 전국의 도로공사 일을 하시다 보니까 같이 온 가족이 움직인 거죠. 60년대만 해도 제 나이에 입학하기도 어렵고, 졸업하기도 어려웠어요. 한 교실에 80~90명 정도가 빼곡히 앉아있었죠.
저는 초, 중, 고, 군 제대 때까지 서울 양천구에 쭉 머물렀어요. 어릴 적 놀던 기억을 이야기하면 1968년에서 1971년 정도였어요. 친구들이랑 해골바가지랑 뼈를 들고 놀았어요. 살던 곳이 서울시 양천구 화곡동, 신월동 정도였는데 원래 공동묘지였던 곳을 개발한다고 관을 파고 유골이 방치되고 그랬어요. 지금처럼 인권 의식이 높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죠.
인사
이종덕 보유자는 요즘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직접 유기를 만지고, 만드는 경험을 할 수 있을까?’를 구상하고 있다. 사실 꽹과리나 징, 놋그릇은 익숙하지만 ‘방짜유기’란 단어는 상대적으로 낯설다. 삼국시대부터 신라동, 고려동이라 하여 유기의 명성을 이어간 만큼, 방짜유기가 낯선 단어가 아닌 친숙한 문화유산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