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0~1930년대 광희동 끈목장 집단과

매듭장 정연수


기 간 | 2018.06

채 널 | 『무형유산』 4호, 국립무형유산원



“서울 광희동에 모여살던 끈목장 집단”


광희동 끈목장 집단은 1930년대까지 ‘시구문 안’을 근거지로 활동한 장인촌이다. 경성에서 광희동이라 하면 끈목과 매듭을 떠올릴 정도로 명성이 높았다. 끈목장 집단은 끈목장과 매듭장으로 구성되어 주로 유소나 주머니끈, 허리띠, 대님 등 끈목과 소폭의 견직물 품목을 제작하였다.


대표적으로 설날 풍속인 설빔을 들 수 있다. 어머니가 손수 지어 만드신 색동옷과 함께 끈목장수에게 허리띠와 대님 등을 새로이 마련하여 아이들에게 설빔을 입혔다. 제작기계가 들어오면서 광희동 끈목장들은 가내수공업으로만 이어지던 방식에서 탈피하여, 대량생산과 확장된 유통체계를 구축하였다. 이는 곧 끈목장 집단의 생산 품목이 전국의 약 90% 이상의 소비를 이룩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광희동에서는 그 흔적을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실정이다. 그 원인은 서구문물의 유입과 제작방식의 기계화로 변화된 당시 시대상황에서 찾아볼 수 있다. 서구복식이 전래되면서, 남성을 선두로 일상복이 변모하였다. 한복의 일부였던 허리띠와 갓끈, 당줄, 주머니, 노리개 등의 사용은 급락하였으며, 상당량의 수요를 충당하기 위한 방편이었던 제직기계의 도입은 끈목장의 존재를 무용하게 하였다.


그럼에도 광희동 끈목장 집단의 마지막 세대인 매듭장 정연수와 소수의 장인들이 고집스럽게 끈목으로 매듭을 엮으며 소임을 이어나갔다. 기계화 생산이 가능하게 되면서 끈목장의 역할은 점차 사라졌으나, 손끝 하나하나에 힘을 주어 복잡하고 섬세한 매듭을 엮는 매듭장의 역할은 대체 불가능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1962년 문화재 보존과 활용을 위해 「문화재보호법」이 제정되었고, 1968년에 국가무형문화재 제22호 매듭장 종목 지정 및 매듭장 보유자로 정연수가 인정되었다. 이후 각종 전시와 전수교육 등의 활동을 통해 매듭공예 종목은 현재까지 가장 활발히 전승되는 종목 중 하나로 손꼽힌다.


끈목과 매듭은 계층, 성별, 연령을 불문하고 제작과 소비가 이뤄지던 공예품이다. 광희동 끈목장 집단의 존재는 가장 일상적이던 끈목이 근대기를 거치면서 쇠퇴하는 전통공예의 전형을 보여준다. 동시에 일상적 쓰임새를 지녔던 끈목이 특정 지역 특산으로 취급된다는 사실은 괄목할 만하다.


본 연구는 광희동 끈목장 집단을 중심으로 신문기사와 보고서 자료를 포함한 문헌기록과 구술조사를 통해 변천사와 전승현황을 분석하였다. 근대 공예의 커다란 두 명제인 ‘전통 수공업’과 ‘신식기계 도입’의 전개를 기술문화적 관점으로 고찰하여, 매듭공예의 맥락을 분명히 인식하고자 하는 시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