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
서울 마포구 신촌로 2길 19 마포출판진흥 3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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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딴짓 #귀족영애 #범인
만남일_2021.08.21
에디터_1기 최아현 | 사진_최정남
굳이 밥벌이에만
매몰되지 않아도 괜찮다
서울 마포구 신촌로 2길 19 마포출판진흥 313호
#딴짓 #귀족영애 #범인
만남일_2021.08.21 | 에디터_1기 최아현 | 사진_최정남
만남
몇 해 전, 짧은 서울살이를 하는 동안 문지방이 닳도록 넘나든 공간이 있었다. 복잡한 골목을 비집고 들어서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주택가 사이에 불현듯 등을 밝히고 있던 곳이었다. 거짓말처럼 책과 술이 즐비했고 고요하면서 분주했다. 그곳만 현실에서 뚝 떨어진 다른 세상 같았다.
그가 운영하던 마법 같은 공간은 이제 문을 닫았다. 하지만 첫 직장생활을 막 끝내고 그에게 선물 받은 잡지 ‘딴짓’은 여전히 내 책장에서 제 몫을 차지하고 있다. 설은 하루를 보낸 이들이 낯설게 만나 섬처럼 머물던 공간의 주인이었고 독립 잡지 ‘딴짓’의 세 주인공 중 한 사람인 박초롱을 만나고 왔다.
사람
안녕하세요. 글쓰기로 밥벌이하는 박초롱입니다. 주로 독립출판 매거진 딴짓을 두 명의 동료 황은주, 장모연씨와 함께하고 있어요. 일, 연애, 술에 대한 에세이를 썼습니다. 팟캐스트 진행과 글쓰기 관련한 다양한 청탁, 외주 노동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어요.
저는 굉장한 범인(凡人)이라고 생각해요. 능력도 평범하고, 성격도 평범해요. 사는 방식도 굉장히 무던하고요. 그중에서 잘하는 것이 있다면 제가 평범한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는 거예요. 여기에 하나만 더하자면 대체로 낙관적인 사람이라는 것?
저는 삶을 소풍 온 듯 살아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제가 꼭 이 시대에, 이 장소에 태어났고 그래서 이런 사람이 된 건 사실 엄청난 우연의 산물이잖아요. 그래서 제가 특별히 대단한 주체성이나 고유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만약 제가 조선 시대에 태어났다면 거기에 맞는 사람이 되었을 테고, 2021년 페루에 있었다면 또 그곳에 맞는 사람이 되어 있겠죠. 그러한 상황에서 어쨌거나 ‘내가 어떤 상황에 부닥치든지 내가 취할 수 있는 것은 나의 태도뿐’이라는 생각이 있어요. 그렇다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할까? 조금 여유롭게 삶을 즐기면서 가는 그런 사람으로 살고 싶어요.
솜씨
회사 생활에 너무 회의가 들어서 퇴사했어요. 뭘 할까 생각하다가 글을 항상 쓰고 싶었으니까 ‘과연 글로 밥벌이가 되는지 보자. 반찬값은 안 되겠지만 혹시 쌀이 나오는지 실험을 한 번 해보자.’라고 생각했어요. 일단은 쌀을 벌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그게 마음과 같지 않잖아요? 그래서 다음 생각을 했어요. ‘어떻게 하면 원고 청탁을 받을 수 있을까?’ 내 글을 돈 주고 사게 만들 방법을 생각했더니 포트폴리오가 필요하겠더라고요. 대부분 사람들이 포트폴리오를 쌓잖아요. 그런데 마침 그때 하고 싶은 말이 많기도 해서 독립출판 딴짓을 만들었어요. 그게 2015년 9월이었죠. 8월에 퇴사하고 9월에 만들었으니까 별로 쉬는 시간도 없었던 셈이죠. 그 잡지를 꾸준히 만들었어요. 이후로 지금까지 소소하게 쌀을 벌고 있습니다. 그런데 5년 정도 쌀을 벌다 보니까 이제는 쌀로 안 되겠더라고요. 국도 있어야 하고, 반찬도 있어야 하고, 커피도 마시고 싶고. 그래서 이 일 저 일 많이 하고 있습니다.
딴짓은 시즌 1과 시즌 2가 조금 달라요. 시즌 1은 그야말로 우리가 밥벌이에 매몰되지 않고 우리의 삶을 의미 있게 만들어주는, 내가 좋아하는 일들에 대해서 매회 마다 다른 주제를 잡아 진행했어요. 저희가 총 14권을 발행했는데요. 1권부터 10권까지는 ‘시니어들의, 해외에서, 함께하는, 혼자 하는 딴짓’ 이렇게 키워드를 잡아서 내 삶을 더 재미있게 만들어주는 것들을 말했어요. 반면 시즌 2부터는 조금 더 삶에 딱 붙어서 ‘어떻게 일해야 할까?’, ‘어디서 살아야 할까?’, ‘어떻게 벌고 써야 할까?’, ‘어떻게 소비하고 환경친화적으로 살아야 할까?’ 이런 것들에 대해서 구체적인 이야기들을 담고 있어요. 보통 딴짓에서 전하고 있는 메시지는 일관된 편인 것 같아요. 굳이 밥벌이에만 매몰되지 않아도 괜찮다. 하고 싶은 것을 해봐도 괜찮다. 그거였던 것 같아요.
지역
남양주 퇴계원읍에서 자랐어요. 태어난 곳은 서울이지만 기억이 전혀 없어서 고향이라고 말할 순 없을 것 같아요. 1살 때부터 29살 때까지 남양주에서 살았어요. 대학도, 회사도 남양주에서 다녔죠. 회사에서 사택을 주기도 했지만 주로 남양주에서 지냈어요. 남양주를 고향으로 봐야 할 것 같아요.
제가 6살 때부터 부모님이 교복 가게를 시작하셨어요. 처음부터 교복을 다루신 건 아니고요. 아버지가 재봉사예요. 양복점으로 시작하셔서 30년 정도 옷을 다루는 일을 하셨어요. 작년(2020년)에 은퇴하셨고요. 그래서 저는 그 양복점 생각이 제일 많이 나요. 지금과는 다르게 예전에는 양복을 맞춘다는 게 큰일이었잖아요. 보통 1년에 2번 양복을 맞췄거든요. 설이나 추석, 아니면 누군가 결혼하거나. 양복을 맞추면 다들 설레고, 오늘이 큰 날이고, 목욕하고 오는 거예요. 팔을 이렇게 펼치고 있으면 막 아빠가 치수를 재잖아요. 그 앞에는 큰 재단이 있었고 어딘가 깔끔해 보여야 하는 소파 때문에 응접실이 좋았어요. 응접실에는 3인용 소파 두 개가 마주 보고 있었어요. 주머니에 동전을 넣어두고 그 소파에 푹 앉으면 동전이 스르륵 쏟아졌죠. 그 동전들이 그대로 소파 뒤로 넘어왔거든요? 그러면 소파 뒤로 손을 넣어서 꺼낸 동전으로 간식을 사 먹던 기억이 나요.
양복점에서 교복 가게로 넘어가면서 교복 브랜드의 흐름을 봤어요. 브랜드가 없던 시절에서 브랜드가 생기는 시점, 브랜드가 대기업화되는 과정을 봤어요. 그런데 그게 재밌더라고요. 우리가 사회학책에서 배울 때는 ‘어떤 자본이 하나로 집중되었다.’ 이렇게 한 문장으로 끝나잖아요. 하지만 그게 현장에서 자기의 삶 안으로 들어왔을 때 어떻게 우리에게 와 닿는지를 살면서 경험한 거죠. 언젠가 그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어요.
인사
그를 만나면 긴장되기도 하고, 혼이 쏙 빠지기도 한다. 어느 순간에는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잊었다가, 어떤 말은 먼 길을 따라와 일기장에 은근슬쩍 자리를 차지하기도 한다. 그렇게 집에 와 정신을 차리면 엄청난 환영과 대접을 받다 온 기분이 든다. 덕분에 재미를 찾아 주린 배를 움켜쥐고 나다닌 지 한참 만에 그를 만나 약간의 허기를 달랬다. 이제 남은 헛헛함을 채우는 것은 나의 몫이라는 생각이 든다. 언제인가 그와 그의 주변에서 받은 곰살스러운 감각을 보답할 날이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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