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다음을 고민하며

자리를 지키는 동네 어른


전북 전주시 완산구 전라감영3길 13-10

본가칼국수  이경재


직 업   식당 사장님

입 문   1996

운 영   문의 후 방문 / 063-284-3301

출처_도심살림 Vol.00 일부 발췌·작성 | 에디터_서두리

점심시간, 웨딩의 거리를 지난 적 있다면 파란색 배달통을 실은 오토바이를 마주쳤을지 모릅니다. 메뉴는 바뀌었지만, 오랜 세월 동안 변함없이 따뜻한 음식을 배달해주는 본가칼국수. 한창 바쁜 시간이 지나고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는 사장님과 살림 이야기를 나눠보았습니다.



원도심 내에서 식당을 시작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저희(부부)가 식당업을 한 지는 23년이 되었어요. 전동에서 조그맣게 시작을 했어요. 1996년 2월 정말 추울 때 시작했어요. 눈이 엄청나게 오는 날에 김장을 200포기를 했었어요. 그때 생각이 갑자기 나네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해서 정말 처음에 고생을 많이 했어요.


원래는 아버지가 하시던 금은방을 물려받았는데, 그거 가지곤 못 먹고 살겠다 싶어 문을 내리고 그 자리에서 식당을 시작했어요. 요식업에 대한 일을 처음 배우고 한 3년을 하니까 이제 좀 하겠다 싶었죠. 거기서 쭉 하다가 99년에 중앙동으로 넘어오고 이 동네에 계속 있었죠.


전주 원도심 상권에 변화가 오던 시기가 있었던데, 그 영향을 받은 게 있다면?


전주 구도심에서 모든 게 이뤄지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게 2000년 때까지예요. 1999년 즈음 전주에 베드타운이 형성되면서 외곽지역이 개발되기 시작했어요. 평화동, 삼천동, 아중리, 송천동으로 구도심의 상권이 다 나가버린 거예요.


우리 가게가 전동에서 이 동네(중앙동)로 와서 삼겹살집을 시작했는데. 어디 개업했다고 연락을 하지 않았는데도 하루에 100만원을 벌었어요. 그 당시 삼겹살이 2,500원이었는데 말이죠. 그런데 그 다음 해 베드타운이 형성되면서 바로 쭉쭉 사람들이 빠져버렸어요. 원래는 중앙동이 있는 엘브즈, 전주백화점에서 옷가게 하던 상인들이 밤 10시쯤 마무리하고 밥 먹고 술 마시러 그 늦은 시간에 나왔어요. 그래서 ‘이거 장사 잘 되겠다’ 했는데. 아이고 1년 만에 그냥 다 빠져버렸어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분위기가 갈수록 안 좋아진 거죠. 그때는 밤 10시 반부터 시내 상권이 막 살아났었어요. 밤 12시에도 막 가게들이 불을 켜 두고 장사를 하는 데가 많았어요. 지금은 10시 넘으면 시내 한가운데 아무도 없어요. 그래서 거기서부터 우리 가게도 메뉴에 변화를 준 거에요. 왜냐면 고기 장사가 안 되는 거예요. 싸게 팔아도 안 돼. ‘이거 안 되겠다’ 싶어서 그때부터 밥 배달을 한 거죠. 고것이 또 먹혔네. 빨리 그 상황에 맞춰서 우리 살길을 찾아야 하잖아요. 그렇게 바꾸면서 6개월만에 밥 배달하는 그릇이 100그릇 가까이 늘어간 거예요. 6개월 만에. ‘배달만이 살 길이다’ 했는데 그게 딱 먹혀들어갔어요. 그래서 그걸로 지금까지 먹고살고 이 동네에서 살고 있네요.


지금까지 원도심 내에서 가게를 꾸려가고 계시는데, 여기서 일할 때 가장 중요한 부분은 무엇이라 생각하세요?


식당업을 20여 년 하면서 항상 다음 것을 생각하고 있어요. 내가 ‘이 메뉴가 아니다’ 싶을 때는 차선으로 선택할 수 있는 메뉴가 준비되어 있어야 하고요. 또 ‘이 길이 아니면 내가 무엇으로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인가’를 항상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해요. 예를 들면, 식당 메뉴도 처음엔 보리밥이라는 메뉴가 없었어요. 나중에 3년을 지나서 밥을 찾는 손님이 있길래, 면에 어울리는 밥이 뭘까 생각하다가 보리밥. 보리밥에서 보리비빔밥을 생각했죠. 보리비빔밥도 완성메뉴로 출시하기까지 2년 걸렸어요. 그런 준비된 메뉴가 최소한 두세 개는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생각해요.


그것도 항상 바로 투입이 가능한 상태까지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해요. 적은 메뉴로 소규모 가게를 운영하는 데는 그런 준비가 꼭 필요해요. 우리 가게도 지금 그런 메뉴가 두 개 정도 준비되어있어요. ‘지금 일도 많은데 그것까지 추가해서 하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라든지 ‘손님들한테 선택의 폭만 늘려주는 거 아닌가?’ 고민이 되어서 안 하고 있을 텐데. 실제로 매출 상승 여건이 되느냐 아니냐는 해봐야 하는 거예요. 물론 작은 가게에서 도전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지만 준비는 하고 있어야 하죠. 그래야 사는 거예요.


그리고 소규모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게 있다고 봐요. 일을 하다 보면 스트레스가 생기잖아요. 그걸 해소하는 방법이 있어야 해요. 저는 음악도 듣고 오토바이도 타요. 진공관 오디오하고 오토바이가 있어요. 이런 것들이 하나 쯤은 있어야 돼요. 그래야지 아니면 너무 힘들어요. 그걸로 한 번 털어버리고 머리도 잠깐 식혀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앞으로도 계속 이 골목을 지켜가실 텐데, 어떤 골목, 어떤 동네가 되었으면 하시나요?


먹고 즐기는 것 말고도 다양한 문화가 들어와서 거리가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사실 업종 제한 정책이 큰 의미가 없다고 봐요. 뭐든지 해서 동네가 활성화가 되어야 좋은 거예요.

요즘 밤 되면 웨딩의 거리만 가도 텅 비었어요. 여섯시만 지나면 정말 검껌해요. 업종 제한 두지 말고 아무거나 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뭐 술집도 좋고, 한복을 하고 싶으면 한복도 하고. 하고 싶은 거 하면서 다양한 문화가 공존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리고 집주인들이 생각을 바꿔야 해요. 잘 안 되잖아요. 안 되면 젊은 사람들이 들어오게끔 만들어줘야죠. 가겟세 저렴하게 내놓고 오랫동안 장사할 수 있게끔 해주는 거죠. 그래서 거리가 활성화되면 집세 조금 더 받는 것보다 훨씬 많은 걸 얻을 거예요. 두 개를 다 가져가야겠다 욕심내면 하나님이 절대 두 개 다 안 줘요. 한 개만 주지. 인간의 욕심이 부르는 화에요. 난 그렇게 생각해요.



90년대생 전주 청년들은 소위 ‘시내’라고 불리는 고사동을 도심의 중심으로 생각합니다. 그들이 주로 놀고 먹으러 들린 익숙한 번화가이기 때문이겠지요. 그래서인지 사장님과 대화하는 중간 중간 익숙하지 않은 동네의 이름이 등장하자 머릿속에서 원도심의 지도를 그려보느라 애를 먹었습니다. 이야기를 주고 받다보니 원도심 전성기의 흐름이 선명해지고, 쉼 없이 변화하는 도심에 맞춰 고민 하며 부딪힌 사장님의 노력이 느껴졌습니다.


한 곳에서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는 일은 자신의 것을 놓치지 않은 채 끊임없이 주변과 타협하며 버티는 일이었습니다. 끝까지 버텨낸 골목 어른의 삶을 듣고 나니, 어느 자랑 섞인 조언들보다 힘이 되었습니다. 사장님과 나눈 이야기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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