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와 함께 나이 먹어가는 가게


전북 전주시 완산구 풍남문2길 124-1

백화노트사  유기천


직 업   문구사 사장님

입 문   1960년대 개업 (2대째 운영)

운 영   문의 후 방문 / 063-284-2860

출처_도심살림 Vol.00 일부 발췌·작성 | 에디터_문주현

사람처럼 공간도 늙어간다. 오랜 삶의 자국이 묻어 있는 공간에서는 변화도 잠시 걸음을 멈춘다. 주인과 함께 늙어가는 가게를 우리는 ‘노포’라고 부른다. “한 입 베어 물면 입안에 한 시대가 들어오는 듯한 식당이 있다”, 책 『노포의 장사법』을 쓴 요리사 박찬일은 시대의 기억을 품고 있는 가게를 노포라 불렀다.


‘일생을 바쳐 같은 일을 지속하는 장사꾼은 어떤 사명감을 가지고 있으며 주인장의 진심은 변하지 않는다.’

 

전주 원도심. 구 남부배차장 거리의 문구 가게 백화노트사도 그런 노포 중 하나다. “한 200여 명은 떠나 보낸 것 같아요.” 이웃 상인들이 여러 이유로 가게를 옮기고 영업을 종료하는 것을 지켜봐 왔던 백화노트사 유기천 대표는 다른 노포들처럼 백화노트사에 시간을 고이 묶어뒀다.

오래된 간판 아래 작은 문을 열고 들어가면 높은 천장 아래 넓어보이는 공간이 시선을 끈다. 어림잡아 80년은 더 된 것 같은 건물. 조금씩 고쳐가며 가게를 운영한 것이 현재에 이르렀다. 전주 원도심이 번성했던 7~80년대, 이웃들이 떠나기 시작한 2000년대, 그리고 원도심이 다시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최근까지... 백화노트사는 그 시간을 고이 간직하고 있다.


“남부배차장을 알아요?”

 

40여 년 전, 남원 ,순창, 정읍 등 전북 곳곳으로 가는 버스들이 모이던 이 곳을 사람들은 남부배차장이라고 불렀다. 버스 하나 들어가기 좁아 보이는 거리 초입, 그 배차장 옆에 백화노트사가 자리하고 있었다. 40여 년을 지켜온 가게. 유대표는 추억을 꺼내놓듯 가게 소개에 앞서 남부배차장을 소환했다. 중앙극장, 전북도청, 미원탑 등 옛 전주의 대표적인 공간들이 하나, 둘 사라졌지만 백화노트사는 시간의 때가 묻은 간판과 함께 건재하다.


1960년대 풍남문 인근에서 선친이 처음 문을 연 백화노트사는 1995년부터 유대표가 이어받아 운영하고 있다. 학업을 위해 잠시 떠나 있던 때를 제외하면 어린시절부터 오롯이 이곳에서 지냈다.


도심 앞에 ‘원’, ‘구’가 붙지 않던 시절. 백화노트사 옆에 있던 남부배차장은 각지에서 온 사람들로 언제나 문전성시. 물건을 사고파는 흥정과 함께 시끌벅적 이야기가 넘치던 곳이었다. 남부시장 가구거리, 고물자 골목, 화구거리, 대표적인 상가 거리를 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곳을 지나야 했다. 그리고 구 중앙극장이 있을 대는 젊은이들이 약속을 잡는 장소이기도 했다. 전주 사람들의 만남이 시작되는 곳. 시골에서 도시로 꿈을 찾아 전주를 찾을 때면 꼭 찾아야 하는 곳. 골목길 곳곳의 가게들이 이웃들이었다. 저녁에 전주 시내에서 백화노트사까지 걷게 되면 “어이, 한잔 하고가.”라며 팔목이 붙잡히곤 했다. 골목은 활기가 넘쳤고 인정도 넘쳤다.

 

“(풍남초는 6~70년대) 한 반에 70~80명으로 15반을 채웠어요. 1학년부터 6학년까지 말이죠. 그 친구들이 모두 원도심 동네 친구들이었어요. 그때는 (아버지가 운영하던 시절) 문구사도 잘 되었지요. 학생들이 커가는 동안 문구는 학교에서 항상 필요하잖아요. 그리고 다 커서 일을 하게 되면 사무용품을 사기 위해 문구사를 찾게 되지요.”

“도시의 슬럼은 빛이 사라지기 시작하면서 느낄 수 있어요.”

 

남부배차장 거리로도 불렸던 이곳의 활기는 IMF와 전북도청의 효자동 이전을 시작으로 힘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더욱이 학교마다 학생 수가 매년 감소하면서 문구 사업도 어려워졌다.

 

“IMF가 터지면서 자영업이 어려워지기 시작했고 전북도청이 이전하면서 사람들이 빠져나가는 것이 보였죠. 2000년대 초반부터 슬럼화가 시작되었어요. 도시의 슬럼은 무엇으로 느낄 수 있는지 알아요? 바로 빛이에요. 저녁에도 밝았던 빛들이 사라지고 골목이 어두워지면서 사람드르이 발길이 뜸해지게 돼요.”

 

빛이 사라져 사람이 줄어든 것일까? 사람이 줄어 빛이 사라진 것일까? 이웃이 떠난 자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옆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게 된 시기이기도 했다. 공간처럼 그들도 나이를 먹어간다. 이들이 작은 빛이 될 수 있다면... 이들을 빛이 될 수 있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원도심, 신도시 그런 말에 크게 의미를 두고 싶지 않아요. 결국 사람이 많고 적음의 차이인데, 서로의 영역을 지켜가면서 변화가 이뤄지면 좋을 것 같아요.”

밀어붙이는 방식의 도시재생보다는 주민들이 살아가며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방법. 화려함 대신에 소소함이 자리 잡은 원도심에서 유 대표는 작은 일 하나를 시작하려 한다. 동네 어른들을 돌보는 일을 작게 시작하고자 한다는 유 대표. ‘백화노트사’라고 적힌 오래된 간판을 새걸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라 원도심에서 노포로서의 ‘백화노트사’를 지키는 것을 사명감으로 삼은 것 같았다. 아버지로부터 이어진 노포 ‘백화노트사’를 운영하는 것과 함께, 작지만 동네 어른들을 돌보는 일. 어쩌면 이것이 전주 원도심의 도시재생이 바라는 것이 아닐까?

 

“동네가 조금 더 밝아졌으면 하는 것 말고는 큰 변화를 바라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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