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식하기를 참 잘했다. 그런 생각이 들어


전북 전주시 완산구 천잠로 337

 유인자


직 업   전주음식 명인

입 문   2000

메 일   goong2000@hanmail.net

SITE     www.gooong.co.kr

운 영    매일 12:00 - 15:00, 18:00 -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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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 #한정식 #궁중음식

만남일_2021.09.17 | 에디터_설지희

사진_2021 전주비빔밥축제 운영사무국, 궁 제공

사람


1952년 생이고 군산이 고향입니다. 7형제인 집에서 자랐어요. 어릴 때 소꿉놀이로 음식을 한다고 풀을 뜯어서 김치를 담그려 했어요. 빨간색 김치를 만든다고 고춧가루를 뭐로 쓰지 하고 고민하다가 동네에 공사한다고 있었던 황토를 가져와서 ‘이게 고춧가루야’하고 김치를 버무렸어요. 이 기억만 생생한 거 보면 제가 맵시 있게 음식 하는 성향은 그때부터 잠재되었던 것 같네요. 그래서 지금 제가 음식점에서 일을 하고 있는 것과 연결 짓기도 해요.


전주는 결혼을 하면서 오게 됐어요. 이전에는 군산에서 대학이랑 회사를 다녔어요. 시댁이 4대가 사는 집이었어요. 어른들을 모셔서 음식에 대한 정성이 엄청났죠. 제가 우리 시댁 할머니, 어머니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그분들께 전통 음식을 제대로 하는 법을 배웠죠.


우리 집안의 음식을 깊이 있게  체계적으로 공부를 해야겠다 싶어서 40대에 서울 궁중음식연구원을 다녔어요. 연구원에서 공부를 계속하면서 강의랑 교육도 많이 했어요. 시민대학이랑 평생교육원에서도 하고요. 요즘은 코로나 때문에 안 나가게 돼서 마음이 한가해졌어요.


제가 음식을 업으로 삼는 것을 보고 형제들은 참 불가사의하다고 음식이랑 연이 없던 아이였는데 희한하다고 해요. 그러면 제가 어릴 적에 만든 시금치 무침을 부모님께 칭찬 받았다고 반박하면, 그 칭찬을 진짜로 받아들였냐고 놀리더라고요. 부모님은 제가 기특해서 칭찬한 거지 맛있어서 한 게 아니라고요.


솜씨


시댁에서는 화전을 하면 색색이 오색으로 물들인다고 원하는 색소를 구하러 전주 시내를 다 돌아다녔어요. 대추채, 밤채도 얇게 포를 떠서 고명으로 올리는데, 그냥 쓰는 게 아니라 얇게 썰어 놓은 채를 돋보기로 보면서 다 골라냈어요. 화전 속에 들어가는 팥소도 씹히는 거 없애야 한다고 껍질을 다 벗겼죠. 


그때는 아기도 키워야 돼서 그런 섬세한 공정에 힘이 들어 불만이 있었죠. 왜 그렇게까지 하냐고 물어보니 이렇게 손길을 들여야 음식이 이쁘고, 먹기도 좋다고 하셨어요. 그때는 어머니 성격이 그런가 보다 하고 여겼어요. 제가 연구원을 다녀보니 궁중음식도 어머니처럼 섬세하게 안 하더라고요. 서울에 어머니처럼 제대로 하시는 분이 없어요. 지금은 제가 어머니처럼 음식을 하니까 젊었을 적 순간들이 생각나요. 우리 어머니가 이래서 이랬구나, 나이를 먹어가면서 하나씩 생각이 나요.


음식이 아름답게 만들어질 때가 가장 행복해요. 잡채를 해도 색의 조화와 맛에 대해서 생각하고 연구하죠. 딱 담아졌을 때 조화로워서 내 마음에 드는 모양새가 나와야 해요. 그래야 손님들 앞에서 당당하고 행복합니다. 이런 제 생각을 직원들에게 가르쳤어요. 그래서 손님들이 맛있게 드시고 빈 접시가 됐을 때, 맛있다 해줄 때 좋아요.


좋은 음식은 좋은 재료를 써야 나와요. 가장 먼저 재료가 좋아야 하고 거기에다가 자기 기술력이나 정성이 합해질 때 완성이 되죠. 그리고 더 나아가 먹어서 약이 되는 건강한 음식이 좋은 음식이에요. 조미료 넣은 단순히 입에 맞는 게 아닌 들어가는 모든 재료가 서로 궁합이 맞을 때 건강하고 좋은 음식이죠.

지역


군산에서 살 때는 밥도 안 해먹었는데, 시댁의 전주 음식을 먹어보니 참 맛있고 깊이가 있어서 마음에 들었어요. 음식을 잘하는 집안이라 제사를 모시거나 손님이 오시면 전도 부치고, 떡도 하고, 화전도 예쁘게 하고 손이 많이 가는 음식들을 했어요.


시댁 할머니가 원래 음식 솜씨가 좋으셨어요. 옛날 전라감영에서 서울서 손님이 오면 할머니하고 친구하고 들어가셔서 음식을 담당했을 정도의 실력이었대요.  정성을 다한 음식을 항상 맛있게 먹었고, 그때 제가 음식에 관심이 있었다면 할머니에게 더 깊이 알아봤을 텐데 그냥 넘어갔던 게 조금 아쉬워요. 참 대단한 할머니였는데 말이에요.


40, 50대는 국제 음식연구원에서 공부하고 강의, 교육을 했어요. 이제는 젊은 후학을 양성하려고 해요. 나이 많이 먹은 사람의 경험을 젊은 층에 물려줘야 하죠. 젊은이들도 나서서 배우고 물려받아야 해요.



인사


유인자 명인은 전주 토박이가 아니지만 시집을 오게 되면서 전통적인 전주 음식의 매력에 매료되어 업으로 삼은 사람이다. 어찌 보면 어릴 때부터 정성스러운 음식을 만드는 것에 대한 단서가 있는 운명과도 같은 삶을 살고 있다. 명인이 하는 전주 음식의 진가는 정성스러운 섬세함이라는 생각이 든다. 명인에게 좋은 음식이란 좋은 솜씨로 좋은 재료를 선정하고 고집스러울 정도로 정성스러운 과정으로 음식의 생김새까지 조화를 맞추며 입과 눈을 즐겁게 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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