솜씨
외할머니와 어머니 모두 솜씨가 좋아서 그런지, 저는 시집가기 전까지 한 번도 음식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도 음식을 곧잘 했어요. 사실 새살림을 시작하고 본격적으로 음식을 시작했죠. 결혼 후에 어머니는 제신혼집에 ‘딩동’ 초인종만 누르고 무언가를 놓고 가셨어요. 음식 재료와 엄마의 레시피가 있었죠. 그렇게 요리를 해보며 어머니와 맛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어요. 차곡차곡 쌓이니 어느새 제대로 음식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게 어머니의 교육방식이었던 거죠.
어머니는 호기심과 함께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어요. 음식을 악착같이 배우고 식당을 일굴 수 있었죠. 그런데 열심히 일군 식당이 제가 20대 중반일 때 크게 어려워졌어요. 그 시기에 어머니가 어떤 마음으로, 어떤 철학으로 가족회관을 운영했는지 들을 수 있었어요. 단순히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음식에 대한 사명이 있었죠. 그 사명감을 지켜드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때부터 적극적으로 식당 일에 임하게 됐어요. 제가 어머니의 철학을 지키고 전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가족회관이 사라지게 둘 수 없다는 결심을 했죠.
어려운 시기를 겪으며 가난이 참 무섭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가난 자체보다도 마음의 여유가 없어지는 게 무섭더라고요. 또, 전통만 고집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을 해요. 시대가 원하는 맛을 추구하고, 사람들이 찾는 맛을 연구하면서 전통을 지켜야 하죠. 사람들이 찾는 맛을 찾는 것, 그래서 가족회관이 단단히 이어나가기를 계속 고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