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철학을

내가 전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전북 전주시 완산구 전라감영5길 17

가족회관 양미


직 업   전주음식 명인

입 문   1976

메 일   ym1441@hanmail.net

SNS   @bibimbap_house 

운 영    매일 10:30 - 20:30 / 063-284-0982

#무형문화재 #백년가게 #어머니

만남일_2021.09.17 | 에디터_설지희

사진_2021 전주비빔밥축제 운영사무국, 가족회관 제공

사람


저는 64년생 용띠예요. 저희 어머니 김년임은 2006년에 전주 음식 명인 1호로, 2008년에 전북무형문화재로 인정되셨어요. 어머니는 어릴 적부터 남달리 호기심 많은 아이였다고 해요. 외할머니가 어렸을 적 먹었던 잔치 음식들을 곧잘 해보곤 하셨대요. 어머니는 외할머니가 음식을 할 때마다 쪼그리고 앉아서 이것저것 막 물어보았대요. 어머니가 음식에 흥미를 보이고 자꾸 물어보니깐 외할머니가 새로운 음식이나 평범치 않은 음식을 할 때면 ‘막내야, 이리 와 봐라.’하고 부르셨어요. 그렇게 어머니를 주방에 앉혀놓고 설명하시면서 음식을 하셨다고 해요.


전주 출생인데 어릴 적, 상황이 여의치 않아 5년 정도 장수에서 지내다가 다시 쭉 전주에서 지내고 있어요. 어릴 때 도시에서 공주님처럼 자라다가 완전 시골이 장수에 가니 초등학생인 저에게 큰 충격이었죠. 그래도 장수에서 추억이 참 소중한 것 같아요. 그 시기가 없었으면 저는 저만 아는 이기적인 성격이 되었을 거예요.


어머니가 항상 일을 하셨기 때문에 전주에 돌아와서 큰이모 댁에 자주 맡겨졌어요. 잘 챙겨주셨지만 제 집은 아닌지라 큰이모댁에서는 막내처럼 대해주셨지만 저는 오히려 눈치가 늘었어요.  그래도 저는 8살까지 가족의 사랑, 어머니의 사랑을 잘 기억하고 있어요. 어릴 적 어머니와 떨어져 지내며 원망하기도 했지만 어머니가 얼마나 가족회관을 사랑하는지 알고, 그 소중함도 알기에  가족회관을 잇고 달려나가고 있습니다.


솜씨


외할머니와 어머니 모두 솜씨가 좋아서 그런지, 저는 시집가기 전까지 한 번도 음식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도 음식을 곧잘 했어요. 사실 새살림을 시작하고 본격적으로 음식을 시작했죠. 결혼 후에 어머니는 제신혼집에  ‘딩동’ 초인종만 누르고 무언가를 놓고 가셨어요. 음식 재료와 엄마의 레시피가 있었죠. 그렇게 요리를 해보며 어머니와 맛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어요. 차곡차곡 쌓이니 어느새 제대로 음식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게 어머니의 교육방식이었던 거죠.


어머니는 호기심과 함께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어요. 음식을 악착같이 배우고 식당을 일굴 수 있었죠. 그런데 열심히 일군 식당이 제가 20대 중반일 때 크게 어려워졌어요. 그 시기에 어머니가 어떤 마음으로, 어떤 철학으로 가족회관을 운영했는지 들을 수 있었어요. 단순히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음식에 대한 사명이 있었죠. 그 사명감을 지켜드리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때부터 적극적으로 식당 일에 임하게 됐어요. 제가 어머니의 철학을 지키고 전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가족회관이 사라지게 둘 수 없다는 결심을 했죠.


어려운 시기를 겪으며 가난이 참 무섭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가난 자체보다도 마음의 여유가 없어지는 게 무섭더라고요. 또, 전통만 고집하는 건 아니라는 생각을 해요. 시대가 원하는 맛을 추구하고, 사람들이 찾는 맛을 연구하면서 전통을 지켜야 하죠. 사람들이 찾는 맛을 찾는 것, 그래서 가족회관이 단단히 이어나가기를 계속 고민합니다.

가업


가업을 잇는다는 것이 참 쉽지는 않아요. 그런데 제 딸은 어려서부터 가업에 대한 고민이 많았어요. 저는 어떤 전공을 하든 가족회관에 도움이 될 것이니 네가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했어요. 사진을 공부하면 음식을 잘 담는 사진을 찍으면 되는 것이고, 심리학을 배우면 우리 음식을 좋아하는 고객들의 심리를 파악하면 되는 것이 아닐까 하고 대답해 주었어요. 딸은 스스로 고민해서 전주대 조리학과에 입학했고, 입학 이후부터 매일 자정이 넘어서야 집에 들어왔어요. 매일매일 실습실에서 공부하고, 그렇게 4학년 수석으로 졸업했어요. 지금은 고등학교에서 음식을 가르치고 있죠. 딸은 저에게 자신이 교직 생활 열심히 하고 퇴직하면 가족회관을 이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합니다. 교직하면 연금도 나오니 장사일의 단점을 보완하고, 칠십부터 가업을 잇는다고 하는데 얼마나 든든한지 몰라요.



인사


가업으로 3대째 이어지는 가족회관의 이야기는 이어진다는 것이 어려워진 오늘날 좋은 귀감이 된다. 음식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으로 악착같이 가족회관을 일군 1대 김년임, 어머니의 가족회관과 음식에 대한 뜻에 감명받아 이어나가는 2대 양미, 할머니부터 일궈낸 식당을 계속 이으려 노력을 하는 예비 3대 따님까지 그들의 공통점은 음식과 식당을 향한 열정과 사랑이다. 100년 후에도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가족회관으로 남아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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