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감독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담고 전하는 일

영화감독 이정준


직 업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입 문   2011

메 일   iskari85@gmail.com

운 영   문의 후 방문 / 010-3169-8938




#다큐멘터리영화 #풍물패 #무형문화재

만남일_2022.02.10

에디터_설지희 | 사진_김덕원

감독의 시선으로

이야기를 담고 전하는 일


영화감독  이정준


직 업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입 문   2011

메 일   iskari85@gmail.com

운 영  문의 후 방문 / 010-3169-8938

#다큐멘터리영화 #풍물패 #무형문화재

만남일_2022.02.10 | 에디터_설지희 | 사진_김덕원

만남


2021년 우연히 영화 〈울림의 탄생〉을 보게 되었다. 경기도무형문화재 악기장 임선빈 보유자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였다. 무형문화재를 영화소재로 담은 것 자체가 큰 관심을 끌었고, 결론적으로 매우 몰입하고 봤다. 기존 방송 프로그램에서 무형문화재를 만날 때 항상 던지는 “이 일이 힘들지 않으세요?” 식의 신파가 아니었다. 치열하게 삶을 살아가는 사람, 임선빈을 담아낸 감독의 시선과 전개가 마음에 들어 인터뷰를 요청하게 되었다.


사람


다큐멘터리 감독 이정준입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역사를 좋아했어요. 대학생 때 역사문화학부로 진학을 하고, 풍물패에서 상쇠도 했었어요. 역사콘텐츠에 담긴 스토리텔링이 좋았어요. 한 수업에서 장예모 감독(張藝謀, 1950~)의 영화를 가지고 중국사를 배웠는데, 너무 재밌고 이해가 잘되는 거예요. 다른 수업에서는 역사콘텐츠를 만들어 발표하니 좋은 성적이 나오더라구요. 그때 역사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PD가 되자고 마음 먹었죠. 대학 졸업 전 바로 작은 케이블 TV 방송국에 취직했어요. 오래 일해보자 생각했지만 너무 답답하더라고요.  그때 “나는 앞으로 어떤 연출가가 되고 싶을까?”  진지하게 고민했고, 현장을 뛰어다니는 연출가가 되기로 결심했죠.


‘다큐멘터리를 제대로 배울 수 없을까’ 라는 고민했을 때 도전했던 게 〈콘텐츠 창의인재동반사업〉이었어요. 그렇게 2013년에 진모영 감독님을 만났고, 지금까지 제 멘토입니다. 진모영 감독님의 조감독으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2013)을 참여하게 됐죠. 이 영화가 흥행했는데 부럽다는 마음보다 같이 촬영하면서 좋았던 기억만 생각나더라고요.  서로 신뢰를 쌓으며 재밌게 촬영해가는 과정들이 재밌었어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따뜻한 느낌을 받았죠. 


영화를 통해 찾고 싶은 제 꿈이 뭐냐고 물어보신다면 저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해요. 백만 영화의 감독이 되는 것보다 좋은 사람이 되는 게 더 좋아요. 깊은 대화를 통해 마치 사랑에 빠진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감독의 시선으로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전하는 일은 아마 제가 죽기 전까지 계속하게 될 것 같아요. 


솜씨


〈울림의 탄생〉(2021)은 소아마비와 청력 손상을 가지고 60년 동안 북을 만들어오신 임선빈 악기장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에요. 영화를 제작하게 된 계기는 2016년 말이었어요. 진모영 감독님이 “왜 영화가 끝났는데 아직도 놀고있냐?”고 하더라고요. 그때부터 어떤 영화 프로젝트를 할까 기획했었죠. 그때 떠오른 게 내가 좋아하는 문화유산, 풍물패, 그리고 소리였어요. 저를 가장 소름돋게 했던 ‘북소리’를 찾고 싶었어요. 


우리나라에서 북을 제일 잘 만드시는 분이 누굴까 찾던 중 임선빈 선생님의 존재를 알게 됐죠. 기존에 하신 여러 인터뷰들을 보니 몸이 불편하신데 무형문화재 자리까지 오르신 대단한 분이셨죠. 선생님의 허름한 작업실이 화려한 작품과 대비되는 상황에 대한 제 고발의식도 선생님을 찾아뵙게된 계기가 되었죠. 


임선빈 선생님을 찾아뵙고, 다큐멘터리에 담고 싶다고 말씀드리니 흔쾌히 허락하셨어요. 선생님은 역으로 대북을 만드는 작업 전체를 기록해달라고 부탁하시면서, 4년에 걸친 여정이 시작됐죠. 영화를 촬영하며 선생님과 많이 친해졌어요. 같이 밥도 자주 먹고 제가 ‘선생님~’ 하면서 팔짱도 잘 끼고 하니 진짜 아들처럼 대해주셨어요. 시사회 없이 극장에서 영화를 선생님께 처음 보여드렸는데 우시느라 아무 말씀도 못 하시는 거예요. 본인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작품을 담았다는 것에 만족하셨어요. 

지역


제 다음 작품의 무대가 ‘중랑천 창동교’인 것은 그곳이 제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죠. 저는 서울시 성동구에서 태어났어요. 4~5살 때 도봉구 창동에 위치한 15층 아파트로 이사했죠. 중랑천 옆에 태어나 자랐고, 중랑천을 떠나있을 때도 도봉구 창동에서 살까 왕왕 생각할 정도예요. 그러다 결혼을 하면서 처음으로 창동을 떠나게 됐는데요. 현재 창동은 재개발 붐이 불고있어요. 제가 살던 곳의 아파트들이 없어질 수 있겠다 싶어 제 고향을 담아보고 싶다고 생각했죠. 


아파트 15층에 살았을 때 제 또래 친구들이랑 모여 살다 보니 같이 친하게 지냈어요. 어머니들끼리는 아직도 연락하는 사이에요. 다 같이 새벽마다 부업으로 신문 배달도 하시며 저희를 키우셨는데 그때 서로 힘이 많이 되셨던 것 같아요. 엄마들의 끈끈한 연대를 담을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고 있고, 지금은 인터뷰를 모두 완료한 상태에요. 창동의 아파트 재건축이 모두 완료되고 훗날엔 어머니들 장례식장에서 틀어놓을 수 있게 하기 위한 장기 프로젝트로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인사


이정준 감독이 ‘문화유산’을 설명하는 내용이 썩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당연한 것으로 모두가 끄덕일 어느 날을 꿈꾼다.


“20살 어느 날, 풍물패에서 선배가 물어보더라고요. ‘너는 문화유산이 뭐라고 생각하니?’라고요. 열심히 짱구를 굴려서 대답했었죠.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이 문화유산이 아닐까요?’라고요. 지금도 그래요. 문화유산이라는 게 되게 어려운 게 아니라 당연히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의 연결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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