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 분당구

저만의 매듭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서울 강남구 봉은사로406 서울 국가무형문화재 전수회관 3층

국가무형문화재 매듭장 이수자 박형민


직 업   매듭장

메 일   dreamlife62@naver.com

운 영   문의 후 방문




#매듭 #회사 #문화상품 #성남 #두아들

만남일_2022.03.02

에디터_김세인 | 사진_김덕원

저만의 매듭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서울 강남구 봉은사로406

서울 국가무형문화재 전수회관 3층

국가무형문화재 매듭장 이수자 

박형민


직 업   매듭장

메 일   dreamlife62@naver.com

운 영   문의 후 방문

#매듭 #회사 #문화상품 #성남 #두아들

만남일_2022.03.02 | 에디터_김세인 | 사진_김덕원

만남


국가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 문을 열자 유쾌하면서도 여유로운 미소가 우리를 반겼다. 그의 이야기는 미소만큼이나 편안했으며 그 속에 담긴 에너지는 결코 가볍지 않았다. 하고 싶은 게 넘쳐나는 매듭장 박형민 이수자의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사람


저는 1962년 7월 14일에 태어난 국가무형문화재 매듭장 박형민 이수자입니다. 서울시 중구 신당동에서 태어났지만, 박형민이 아닌 ‘박동(動)민’이라 할 수 있을 정도로 수차례 이사를 다녔어요. 초등학교 4학년때 이사 때문에 학교만 3곳을 옮겨 다녔죠. 어렸을 때부터 내성적인 성격인데다가 자주 옮겨다니며 나라는 존재가 어떤 존재인지 확립하기 더 어려웠죠.


 2~30대에 사기를 많이 당하며 조금씩 성격이 변한 것 같아요. 환경이 사람을 변하게 만들더라고요. 직접 부딪쳐 상황을 해결해가며 내면이 긍정적으로 변하게 되었어요. 주변 상황이 좋아진 게 아님에도 세상을 바라보는 부정적인 것을 버리니 괜찮아졌어요. 같은 상황이여도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아요.


저는 올해로 환갑을 맞아 새롭게 변할 계기가 생겼으면 좋겠어요. 환갑, ‘60’이라는 숫자는 어떻게 보면 신생아와 같다고도 생각할 수 있거든요. 친구들이랑 여행 가기, 영어 공부하기, 요즘 트렌드에 맞춰 스니커즈 사기 등 사소하지만 그동안 하지 못한 새로운 것들을 해보고 싶습니다. 


솜씨


2009년 매듭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 저는 회사에 다니며 가족들의 매듭을 간단히 도와주고는 했어요. 할아버지대부터 어머니와 누나가 모두 매듭을 하셨거든요.* 그러던 중 인간 관계에 지쳐 큰 마음 먹고 직장을 그만두었죠. 그때부터 조금씩 본격적으로 매듭에 대해 배우기 시작했어요.


쥬얼리와 섬유 회사에 다닌 경험이 매듭을 하는 데에 도움이 많이 되었어요. ‘악세사리를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와 같이 다른 사람은 알기 힘든 정보를 저는 먼저 알고 매듭과 접목한 상품화를 시작할 수 있었어요. 이러한 장점을 살려 저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헤맸어요. 실을 직접 짜보기도 하고 실의 밀도나 색상을 달리해보며 2008년부터 본격적으로 문화상품 개발에 힘썼어요. 상품에 어울리는 포장도 직접 만들었어요. 오롯이 제가 만들었다는 성취감이 크게 다가왔어요. 


코로나19 상황인 만큼 교육 사업도 진행하고 있어요. 국립무형유산원이나 세종학당의 지원으로 집이나 공방에서 매듭을 체험해볼 수 있는 매듭 키트도 제작했죠. 세부 공정 사진과 수치를 함께 추가하여 누구나 쉽게 따라할 수 있게 새로운 방법을 도입해봤어요. 한정된 예산으로 진행되어 아쉬움이 있어요. 다음에는 이번 키트를 발판으로 안내 책자도 공예 교과서 방식으로 만드는 등 더 진화된 키트를 제작하고 싶습니다. 

지역


본적은 평안북도 신의주 쪽이에요. 아버지께서 6.25 전쟁에 참전하셨다가 어머니를 만나 남쪽으로 내려오셨어요. 그리고 저는 서울시 중구에서 태어났죠. 주변에서 역마살이 꼈냐고 물어볼 정도로 이사를 자주 다녔어요.


초등학교 4학년 초까지는 아버지 사업이 잘 돼서 서울에서 사립초등학교를 다녔지만 아버지 사업이 갑자기 어려워져 그 해에만 3번 전학을 갔어요. 그렇게 1974년 성남으로 이사오며 어려운 유년기를 보냈죠.


당시 성남은 지금의 성남과는 다른 모습이었어요. 10평 남짓한 곳에 여섯 식구가 연탄을 떼며 살았어요. 이사를 자주 다니게 되자 성격이 조용해졌어요. 게다가 좁은 집에서 살다보니 기가 죽어서 말도 거의 안하고 내성적인 성격이 되었던 것같아요. 지금도 다섯 차례나 공방을 옮기며 생활하고 있어요. 하지만 근래 마음의 여유를 찾으니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인사


그는 전통공예를 감각적으로 소개하고 있는 ‘CHI PROJECT’(https://chiproject.co.kr/)와 함께 ‘전통 매듭 DIY 키트’와 ‘행잉 플랜트’ 등을 여러 차례 크라우드펀딩한 바 있다. 성공에 안주하지 않고 매번 새로운 것을 찾아가는 그와의 만남을 통해 나 역시도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매듭장 박형민 이수자의 할아버지는 국가무형문화재 매듭장 초대 보유자 故 정연수이다. 2대 보유자는 할머니 故 최은순이며, 3대 보유자가 어머니 정봉섭, 4대 전수교육사가 누나 박선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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