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시흥시

그 소리는 마치 부모님을 그리워하는 저의 소리 같았어요

 경기도 시흥시 과림동 460번지

국가무형유산 악기장 보유자 임선빈


직 업   악기장(북제작)

운 영   문의 후 방문 

참 여   2023 시흥갯골축제 내 공개행사

            2022 임선빈의 삶의 여정 지금, 시흥 展

            2022 무형유산 특별공연〈장인의 발걸음〉


#북메우기 #대북 #올림픽 #울림의탄생

만남일_2022.03.02

에디터_김세인 | 사진_김덕원

그 소리는 마치 부모님을 그리워하는

저의 소리 같았어요


경기 시흥시 과림동 460번지

국가무형문화재 악기장 보유자

임선빈


직 업   악기장(북제작)

운 영   문의 후 방문 


참 여  2022 임선빈의 삶의 여정 지금, 시흥 展

           2022 무형유산 특별기획 공연, 장인의 발걸음


#북메우기 #대북 #올림픽 #울림의탄생

만남일_2022.03.02 | 에디터_김세인 | 사진_김덕원

만남


<울림의 탄생>의 임선빈 보유자를 만나보았다. 북메우기는 북을 제작하는 기술을 말한다. 가죽을 북통에 씌우는 작업을 ‘메운다’라고 하는데, 북 자체의 품질과 소리를 좌우하기 때문에 가장 중요한 작업이다.  북 만드는 기술의 핵심이자 전체가 곧 ‘북메우기’다. 사람 ‘임선빈’의 이야기를 통해 60년 간 자신의 일에 몰두해 온 사람이 얼마나 빛이 나는가 알고 싶어졌다.


사람


저는 1950년생 악기장(북메우기) 보유자 임선빈입니다. 어렸을 때의 고향은 잘 몰라요. 남의 집밥을 얻어 먹기 시작할 때는 충청북도 청주에 살았어요. 10살 때 부모님께서는 저를 서울 이촌동 다리 밑에 두고 가셨어요. 먹고 살기 위해 꿀꿀이죽으로 끼니를 해결했어요.


소아마비를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남한테 많이 맞으며 생활했어요. 맞아서 왼쪽 귀 청력이 완전히 상실됐죠. 배도 너무 곪다 보니, 커서 돈을 벌면 ‘무조건 배불리 먹겠다’고 다짐했어요. 먹는 거에 한이 맺힌 거죠. 이런 생활을 하다 보니 일찍 철이 들었어요. 소위 양아치라 말하는 형들 밑에서 있다가 친구들과 덕양으로 도망쳐왔죠. 그때 전남 여수 덕양에서 우시장이 열렸는데 소가죽을 구하러 오신 황용옥 선생님을 그곳에서 처음 봤어요. 제 스승님과의 인연은 그렇게 시작됐죠.


12살 때부터 본격적으로 선생님 밑에서 북을 배우기 시작했어요. 방에 말려놓은 북을 호기심에 쳐봤는데 북소리가 따뜻한 엄마 품 같았어요. 그때 저는 다른 아이들처럼 부모 곁에서 재롱을 피우며 자라야 할 나이였는데, 그러지 못하는 상황이니 부모님 생각이 나서 서러워지더라고요. 그 그리운 소리를 잊지 못해 북일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솜씨


하나의 북을 만드는데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려요. 소리 조율하는 과정이 제작 공정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 때문이죠. 하나의 북을 조율하는데 많게는 6개월 정도 걸리기도 해요. 원하는 소리를 찾을 때까지 조율하다보니 한편으로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제가 들었던 포근한 엄마의 소리를 잊어버리지 않게 계속 북을 풀었다 조립하는 것을 반복하며 원하는 소리를 찾아갔어요.


스승님이 돌아가시고 북 공방이 무너졌어요. 대들보가 사라졌으니 집이 무너진 거죠. 저는 굶지 않으려 여러 곳을 다니며 기술을 배우고 쫓겨나기를 반복했어요. 사기도 많이 당했고요. 그렇게 북을 제작했는데 하루는 안양시 담당자께서 제가 기증한 대북을 보시고 무형문화재 할 생각은 없냐고 물어보셨어요. 그동안 북에 인생을 걸고 작업해 온 시간들이 아쉬워 보상이라도 받고 싶은 마음에 시험을 쳤고, 1999년 10월 18일 보유자로 인정되었어요.


저에게 대북은 인생의 동반자라 할 수 있어요. 처음엔 아무것도 모르고 북메우기에 뛰어들었지만 지금은 대북으로 이름을 남기고 싶어요. 울림의 값어치가 있는 대북을 제작한 사람, 임선빈으로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지역


지금 제가 있는 300평 남짓한 작업실은 경기도 시흥시에 있는 작업실이예요. 오랜 기간 사용해 손과 눈에 익은 작업실이죠. 하지만 현재 시흥이 재개발 구역으로 결정되면서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하는 상황이 되었어요.


현재 저는 작업실에서 먹고 자며 생활해요. 아내와 아들은 같이 작업을 하다 오후 시간이 되면 각자 집으로 돌아가요. 코로나19 상황으로 북을 찾는 사람도 줄었고 충분한 지원조차 없어 작업실 밖으로 움직이질 못해요. 계속 작업을 도와주는 아들에게 고맙지만 홀로서기가 힘들다는 것을 아니까 지금이라도 그만뒀으면 하는 바람도 있어요.



인사


빈 손으로 시작한 북메우기. 비록 시작은 빈손일지라도 지금의 그는 단단한 내면을 가지고 있었다. 순탄치 않은 길을 걸어왔음에도 인터뷰 내내 담담한 말로 이야기를 전하는 그의 모습을 통해 세상에는 소리로만 전달되지 않는 깊은 울림이 있음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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