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어렸을 때의 기억이 많지는 않지만 가장 첫 기억은 절이었어요. 스님께서 절 키워주셨거든요. 그 뒤에는 보육원에 들어갔다 13살 때 아버지를 만났어요. 아버지는 사업을 하시는 분이셨어요. 이혼도 하셨고 사업에 몰두하시다 보니 저를 찾아오는 시간이 늦어지게 된 거죠.
제주도에서 아버지와 살다 중학교가 끝날 무렵 중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어요. 집을 벗어나니 그동안 해보지 못한 것들에 대한 열망이 생기더라고요. 중국에서 머리도 염색하고 피어싱도 하며 생활했어요. 그러다 아버지가 다시 한국으로 부르셔서 제주도 구좌에서 1년 정도 생활했어요. 주변이 조용하고 스마트폰도 없어 명상도 배우며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죠. 내가 과연 무엇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인지, 불안해하며 많이 고민했던 것 같아요. 1년 정도 생활하다 아버지께 말씀드려 다시 중국으로 돌아갔어요. 중국에서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직해서 일하던 중 아버지가 다시 저를 한국으로 부르셨어요. 그렇게 한국에 돌아와 저만의 사업을 준비한 게 바로 규래차예요.
유학은 내성적인 제 성격에도 큰 영향을 주었어요. 타지, 타국에서 스스로 살다 보니 나답게 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보수적인 집에서 벗어난다는 것 자체가 좋기도 했어요. 주변 시선에, 혹은 주변 환경에 휘둘리지 말고 살자 생각했어요. 나만의 ‘멋’을 찾고자 했거든요.
인사
이재보 대표는 어릴 적부터 남들과 ‘달랐음’을 느꼈고, ‘자기다움’을 강점으로 펼치고 있다. 그 결심이 단단해질 때까지 어떤 터널을 걸었을지 감히 상상하기 어렵지만, 충분히 응원한다.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 하나의 장르로서 사람들한테 인정받고 싶었어요. 제 멋을 따라, 나답게 규래차답게 사는 것이 목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