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답게 규래차답게

사는 것이 목표입니다


규래차  이재보


직 업   티메이커

입 문   2020

SNS   @tea_maker_lj

운 영   문의 후 방문

#귤안에든차 #제주도 #친환경

만남일_2021.12.19 | 에디터_설지희 | 사진_이솔이

만남


지역의 장인과 역량 있는 크리에이터가 만나 로컬 비즈니스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한 취지로 2019년 제주창조경제혁신센터에서 〈로컬 브랜딩 스쿨〉을 진행하였다. 그곳에서 규래차 이재보 대표를 같은 팀원으로 만났다. 그때 규래차를 고민하고 연구하던 모습이 선명하다. 자신만의 신념으로 규래차를 성장시키고 있는 이재보의 이야기를 담았다.


사람


안녕하세요. 저는 제주도에서 규래차를 만들고 있는 이재보입니다. 규래차는 귤의 윗부분을 자르고 건조한 뒤 찻잎을 넣어 만든 차에요. 미세플라스틱이 발생하는 인공 티백을 귤껍질로 대체해 사람들이 안심하고 차를 즐길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저는 중학교 때 중국으로 유학을 갔어요. 보수적인 집을 떠나 중국에서 잠시 방황했지만, 곧 마음을 다잡고 공부에만 집중했어요. 대학교에 가고 싶었거든요. 2년 동안 열심히 공부했고 학교보다는 배움이 먼저라 어느 곳이든 활용할 수 있는 경영과 경제에 대해 배우고자 관련 학과로 진학했어요. 사업은 제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거든요. 


저는 다른 사람들이랑 생각하는 게 조금 다르더라고요. ‘내가 여러 방향으로 꼬아서 생각하는구나’를 느낀 일화가 있었어요. 중국의 대학은 워낙 넓어 스쿠터를 타고 이동해요. 그러다 보니 방학 때 스쿠터를 싸게 팔아서 개강할 때 새로 사는 유학생들도 있었죠. 당시는 중고거래가 지금처럼 발달했을 때가 아니었을 때인데 이런 상황을 잘 이용하면 될 것 같다는 느낌이 왔죠. 제 사비를 들여 싸게 산 스쿠터를 이윤을 남겨 되팔았던 사업을 했어요. 결과적으론 사업자등록증 없이 학생 신분으로 장사를 하면 안 된다고 제지당해 실패했지만 ‘하면 되는구나’를 경험했어요. 


솜씨


지금의 규래차가 나오게 된 건 대만에서의 생활도 영향이 있었어요. 물에 직접 우린 것만을 차라 여겼던 중국과 달리 다양한 문화가 모인 대만에선 정통 차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이 계속 찾는 시장이 형성되어 있더라구요. ‘모든 사람을 만족시키기보다 사람들이 나를 찾게끔 하자’고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어요. 


아이디어를 구체화하던 중 ‘소청감(小靑柑)’에서 영감을 얻었어요. 소청감은 감귤 껍질만 남기고 속을 비워 안에 말린 찻잎을 넣은 중국의 감귤 보이차에요. 제주도에 어울리는 차가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다 나온 게 ‘규래차’예요. 처음부터 인공 티백에서 나오는 미세플라스틱을 줄이고자 귤껍질을 티백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어요. 


규래차는 단순 차가 아니라 제주도 차의 플랫폼으로서 역할한다 생각해요. 저희가 안에 무엇을 담냐에 따라 다른 이야기가 나올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고  ‘동백꽃 위미리할망’과 ‘올레길17번’ 그리고 ‘서문하루방’ 등 로컬 스토리를 담은 차를 만들었어요. 가령, 서문은 돌하르방의 코를 만지면 남자아이를 갖게 된다는 설화가 있어 많은 분들이 찾는 곳이에요. 그 지역과 이야기가 사라지지 않도록 해당 지역인 구좌에서만 구매할 수 있도록 하고 있어요. 

지역


어렸을 때의 기억이 많지는 않지만 가장 첫 기억은 절이었어요. 스님께서 절 키워주셨거든요. 그 뒤에는 고아원에 들어갔다 13살 때 아버지를 만났어요. 아버지는 사업을 하시는 분이셨어요. 이혼도 하셨고 사업에 몰두하시다보니 저를 찾아오는 시간이 늦어지게 된 거죠. 


제주도에서 아버지와 살다 중학교가 끝날 무렵 중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어요. 집을 벗어나니 그동안 해보지 못한 것들에 대한 열망이 생기더라고요. 중국에서 머리도 염색하고 피어싱도 하며 생활했어요. 그러다 아버지가 다시 한국으로 부르셔서 제주도 구좌에서 1년 정도 생활했어요. 주변이 조용하고 스마트폰도 없어 명상도 배우며 많은 생각을 할 수 있었죠. 내가 과연 무엇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인지, 불안해하며 많은 고민을 했던 것 같아요. 1년 정도 생활하다 아버지께 말씀드려 다시 중국으로 돌아갔어요. 중국에서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직해서 일하던 중 아버지가 다시 저를 한국으로 부르셨어요. 그렇게 한국에 돌아와 저만의 사업을 준비한 게 바로 규래차예요. 


유학은 내성적인 제 성격에도 큰 영향을 주었어요. 타지, 타국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살다보니 나답게 살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보수적인 집에서 벗어난다는 것 자체가 좋기도 했어요. 주변 시선에, 혹은 주변 환경에 휘둘리지 말고 살자 생각했어요. 나만의 ‘멋’을 찾고자 했거든요.


인사


이재보 대표는 어릴 적부터 남들과 ‘달랐음’을 느꼈고, ‘자기다움’을 강점으로 펼치고 있다. 그 결심이 단단해질 때까지 어떤 터널을 걸었을지 감히 상상하기 어렵지만, 충분히 응원한다.


“세상에 없던 것을 만들어 하나의 장르로서 사람들한테 인정받고 싶었어요. 제 멋을 따라, 나답게 규래차답게 사는 것이 목표입니다.”

저작권자 © 프롬히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