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영등동

만족할 때까지 작업해야 그에 걸맞는 작품을 얻어요

 전북 익산시 선화로63길 8

슬로비 변중호


직 업   금속공예가

입 문   1994

메 일   bjh5799@hanmail.net

운 영   문의 후 방문 / 010-2377-2624


참 여   2022 전주비빔밥축제 전북한상 展


#대상 #자신감 #노하우 #공개

만남일_2022.07.26

에디터_설지희, 김지현 | 사진_손하원

만족할 때까지 작업해야

그에 걸맞는 작품을 얻어요


전북 익산시 선화로63길 8

슬로비  변중호


직 업   금속공예가

입 문   1994

메 일   bjh5799@hanmail.net

운 영   문의 후 방문 / 010-2377-2624


참 여   2022 전주비빔밥축제 전북한상 展


#대상 #자신감 #노하우 #공개

만남일_2022.07.26 | 에디터_설지희, 김지현 | 사진_손하원

만남


슬로비 변중호 작가님의 작업실을 들어가면 그의 기술력을 단번에 알 수 있다. 금속공예는 몰드작업, 보석디자인, 각종 세공작업 등 테크닉과 기능성, 아름다움을 두루 갖춰야 한다. 이 모든 작업을 능숙하게 선보이고 있는 변중호 작가를 전북 익산 귀금속단지에서 만났다.


사람


저는 금속 공예를 하고 있는 50대 변중호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문방구를 운영하는 사촌 덕에 다른 친구들에 비해 조립 키트를 자주 접할 수 있었어요. 매주 만들다 보니 나중에는 설명서 없이도 빠르게 만들 수 있는 수준이 되었어요. 어머니가 서양화를 하셨는데, 제가 공예에 솜씨가 있는 걸 안 어머니도 아무 말 없이 저를 지지해주셨죠.


많고 많은 공예 중에 금속 공예를 선택하게 된 것은 94년, 대학에 진학하면서부터였어요. 대학 입시를 준비할 당시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공부를 제대로 할 상황이 아니었어요. 그러다 보니 성적에 맞는 대학교가 얼마 없더라고요. 대신 저는 공부보단 데생에 더 자신이 있다 보니 데생만 시험 치는 원광대학교 금속공예과로 진학했죠.


저를 세 단어로 정리하면 ‘끼, 똘기, 그리고 꼴통’ 이라 할 수 있어요. ‘꼴통’이라는 단어가 어떻게 들리실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꼴통’의 다른 말은 자신감이라고 생각해요. 이게 없으면 제가 하고 싶은걸 다 못하고 살았죠.


솜씨


저는 노력으로 안 되는 것은 없다고 생각해요. 제가 그렇게 배웠거든요. 다른 친구들이 4시간 그림 그릴 때 저는 8시간씩 남아서 그림을 그리고 새벽에 제일 늦게 갔어요.


저는 학생들에게 시간이 걸려도 정점을 한번 맛보라고 얘기해요. 예술의 보여지지 않는 희열을 한번 느끼면 그 다음부턴 본인이 만족할 때까지 작업하고 그에 걸맞는 좋은 작품이 나오는거죠. 저는 ‘익산 보석 문화공모전’ 때 그 정점을 맛본 것 같아요. 2006년 ‘익산 보석 문화공모전’ 대상을 시작으로 작품을 내는 족족 상을 휩쓸면서 제 전성기가 시작되었다고 생각해요.


저는 10년을 내다보며 작품을 만들어요. 공모전을 내더라도 10년 치 수상작을 보며 공모전을 공부하고 작품을 만들다 보니 주변의 공모 사업은 제가 다 진행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습니다.


저는 이런 제 노하우를 숨기지 않아요. 오히려 사람들에게 많이 오픈하죠. 기술을 나만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금속 작가다움’ 이라고 생각해요. 저 역시도 제가 배우고 싶은 기술이 있으면 여러 번 찾아뵙고 노하우를 전수 받으면서 성장해왔어요. 제가 받아온 기술을 학생들에게 알려주고, 저는 더 좋은 기술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퇴보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요즘은 금속 공예 말고도 유기 작업도 하면서 다른 소재들을 많이 접목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유기를 시작한 지는 6~7년 정도 됐어요. 처음에는 유기로 반지 1,000개를 만들면 절반 이상이 불량이었죠. 그래도 지금은 가마를 몇 도에 얼마정도 구워야 탄성이 생기는지 여러 시험을 통해 노하우를 쌓고 있습니다.

지역


저는 제 고향을 부천이라고 생각해요. 제가 부천이라고 얘기하면 사람들은 인천이랑 헷갈려 하는데, 저는 그럴 때마다 인천과 부천은 엄연히 다른 곳이라고 말하죠.


저희 변씨 집안은 예로부터 부천 고강동에 집성촌을 이루며 살았어요. 시인으로 이름을 알리신 ‘수주 변영로’ 씨는 저희 증조할아버지시고, 다른 분들도 사업을 하시거나 공부를 하시는 분들이었어요. 그래서 저는 부천 토박이라 할 수 있죠. 그런 부천을 떠나오게 된 건 대학교를 익산으로 진학한 뒤부터였습니다.


익산에서 계속 작업하다가 원광대학교와 우석대학교 조교를 거쳐 현재는 전북과학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어요. 조교 생활을 4년 정도 했으니까 행정을 웬만한 직원분들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되었죠. 저는 쓴소리를 많이 하는 사람인데 제 경험을 바탕으로 조언을 해주다보니 사람들이 고민을 양손 가득 가져와 빈손으로 나가는 경우도 많아요.


인사


어쩌면 낯설 수도 있는 우리들의 방문에도 캔커피 하나를 내주며 매우 친절하게 자신의 작업실과 작업물 그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이야기하는 도중 도중에 자신이 작업한 실반지와 목걸이를 선물로 주셨다. 여전히 내 오른손 약지에 끼워진 그의 예쁜 실반지를 볼 때마다 변중호 작가님의 공예에 대한 열정과 가족의 애정을 떠올린다.

저작권자 © 프롬히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