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광화문 옆에 보면 중앙산업이라고 있었어요. 그 중앙산업 동생분이 광주요라고 무역사업을 했어요. 당시에 우리나라 도자기 무역을 그 사람들이 다 했으니까 굉장히 큰 회사였죠. 그 집에서 큰형님을 수양아들로 삼아서 같이 일을 했어요. 형님이 정치를 잘해. 말도 잘하고, 사업도 수완도 있고. 형님이 거기서 해강 유근영 것도 팔아주고, 고려대 지순택 씨, 뭐 안동호 씨 작품이 나오면 팔아줬어. 큰형님이 유통을 아주 잘했어요.
그때 해강 유근영 선생 아들 유광열 씨가 형님하고 친구예요. 형님이 유광렬 씨한테 “내 동생 좀 가르쳐 줘라.” 해가지고 제가 해강에서 도자기를 배우게 됐어요. 열여덟, 열아홉 살 됐을 때죠.
인사
『선화봉사 고려도경』 태평노인은 “건주의 차, 촉의 비단, 정요백자, 절강의 차, 고려비색 등 모두 천하제일로 다른 곳에서는 도저히 따라할 수 없는 것”이라고 천하제일의 명품 10가지 중 하나로 고려청자를 뽑았다. 그때 청자의 기품을 재현하고 유지하기 위해 이은규 보유자는 끊임없이 외길인생을 걸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