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무언가를 느낄 수 있는
그런 청자를 만들고 싶어요
전북 부안군 보안면 청자로 1594-4
직 업 사기장(청자)
운 영 문의 후 방문
010-9882-1905
참 여 2022 전라감영, 읽 년 읽다 展
#청자 #비색 #자력 #질투 #공부
만남일_2022.07.20 | 에디터_설지희 | 사진_손하원
만남
도자기 중 자기는 1280℃ 이상 고온에서 불을 인내해야 맑은 빛깔을 내는 그릇이 된다. 그 중 청자는 초록과 푸른색이 섞인 비취색으로 고려사람들은 이를 비색(翡色)이라 하였다. 도저히 잡힐 듯 말 듯한 비색 청자를 연구하고, 고려시대부터 지금까지의 청자의 매력을 연마하는 전북무형유산 사기장(청자제작) 이은규 보유자의 삶을 들어보고자 한다.
사람
사기장 보유자 이은규입니다. 전주 이씨예요. 54년생인데, 호적에는 55년생으로 되어 있고요. 고향은 공주시 금홍동이에요. 중학교 졸업하고 나서 바로 70년도부터 도자기일을 했어요. 그러니까 시작한 지 50년이 넘었죠.
큰형님이 먼저 이천에서 도자기를 시작했었어요. 전 원래는 공부를 하고 싶어 했어요. 학비가 없으니까 결국 학교는 못 다니고 여기저기 일을 했어요. 나도 학교 다닐 때 1-2등을 다투던 사람이죠. 그런데 그때는 어디 밥 먹을 데가 없어서 도자기에 기어들어간 거예요.
솜씨
다른 사람들이 한 일 년 배울 것을 나는 한 달이면 마스터했어요. 전통 물레도 잘 차고 조각도 잘하고 상감도 잘하고. 그러니까 자리 뺏길까봐 질투하는 사람들이 많았죠. 지금은 그런 거 없지만 당시에는 내가 나이도 어리고 그러니까 한 서른 쯤 된 사람들이 잣대로 나를 톡톡 때리고 그랬죠. 23살에 군대를 갔는데, 군대 가기 전에 그런 게 제일 심해서 오히려 군대가 더 편했어요. 군대는 내가 할 일만 잘하면 되고, 또 동료 일 도와주면 서로 고마워하고 그랬으니까.
우리가 푸를 청(靑) 자에 자석 자(磁) 자를 써서 청자라고 그러잖아요. 질그릇 자(瓷)자도 쓰긴 쓰는데 자석 자자를 쓰는 경우가 많아요. 그렇게 보면 옛날 사람들이 청자에서 어떤 기운을 봤던 거예요. 뭔가가 자력이 나온다 이 말이죠. 글자 그대로 자력이 나올 수 있는 그런 청자가 돼야죠. 그래서 나는 청자를 만져보라고 하고, 느껴보라고 하고.
작품 하는 사람은 자기가 만든 작품 보면서 모자라고 아쉬운 것만 생각하지 완전한 건 잘 못 떠올려요. 그래도 하면서 제일 좋은 거는 하면서도 배운다는 거예요. 쌀을 미수라고 그러잖아요. 농부가 쌀 한 톨을 얻으려면 여든여덟 번 손이 간다고. 그런데 이건 백 번도 더 가요. 윤용희 교수가 대한민국에서 우리 이은규 씨만큼 청자 공부 많이 하는 사람 없다고 했어요.
지역
광화문 옆에 보면 중앙산업이라고 있었어요. 그 중앙산업 동생분이 광주요라고 무역사업을 했어요. 당시에 우리나라 도자기 무역을 그 사람들이 다 했으니까 굉장히 큰 회사였죠. 그 집에서 큰형님을 수양아들로 삼아서 같이 일을 했어요. 형님이 정치를 잘해. 말도 잘하고, 사업도 수완도 있고. 형님이 거기서 해강 유근영 것도 팔아주고, 고려대 지순택 씨, 뭐 안동호 씨 작품이 나오면 팔아줬어. 큰형님이 유통을 아주 잘했어요.
그때 해강 유근영 선생 아들 유광열 씨가 형님하고 친구예요. 형님이 유광렬 씨한테 “내 동생 좀 가르쳐 줘라.” 해가지고 제가 해강에서 도자기를 배우게 됐어요. 열여덟, 열아홉 살 됐을 때죠.
인사
『선화봉사 고려도경』 태평노인은 “건주의 차, 촉의 비단, 정요백자, 절강의 차, 고려비색 등 모두 천하제일로 다른 곳에서는 도저히 따라할 수 없는 것”이라고 천하제일의 명품 10가지 중 하나로 고려청자를 뽑았다. 그때 청자의 기품을 재현하고 유지하기 위해 이은규 보유자는 끊임없이 외길인생을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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