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완주군 |
전북 완주군 소양면 원대흥길 127-33
직 업 가구디자이너
S N S @won_deok
운 영 문의 후 방문
참 여 2022 전라감영, 읽 년 읽다 展
#소목장#전통가구#현대가구
만남일_2022.07.22
에디터_김지현 | 사진_손하원
전통가구, 현대가구의 경계를
자연스럽게 넘나드는 것이 좋아요
전북 완주군 소양면 원대흥길 127-33
직 업 가구디자이너
메 일 nongbang686@gmail.com
SNS @won_deok
운 영 문의 후 방문
참 여 2022 전라감영, 읽 년 읽다 展
#소목장#전통가구#현대가구
만남일_2022.07.22 | 에디터_김지현 | 사진_손하원
만남
인스타를 찾아보다 멋진 가구가 눈에 들어왔다. 가구의 만듦새에서 범상치 않음을 느꼈다. 어떤 생각으로 가구를 만들었을까. 심플하지만 알 수 없는 아우라가 느껴졌다. 당장 그가 궁금해졌다. 인스타로 찾아가도되겠냐 물었고, 그는 흔쾌히 어서오라고 했다. 머리를 질끈 묶고 터덜터덜 나왔던 작가님의 모습에서 여유를 느꼈다. 그리고 공방 한편에 걸려있는 수많은 도구들이 그가 걸어온 길을 알려주었다.
사람
79년생이고요. 태어난 건 익산이에요. 혼자 산에서 노는 경우가 많았던 걸로 보아 활달한 성격은 아니였던 것 같아요. 산에서 놀던 어릴 적 기억이 지금 제 직업을 선택하는 데에 큰 영향을 준 것 같아요. 집 뒤에 조그마한 산이 있었는데 산에 올라가서 나무도 만지고 껍질을 벗겨서 무언가를 만들었어요. 그게 저랑 잘 맞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대학교를 준비할때 건축과로 진학하고 싶었어요. 근데 부모님과 상의를 하면서 반도체쪽이 더 낫지 않겠나 생각을 하면서 진학했는데, 건축으로 가지 못한게 후회되더라라고요. 결혼할 때가 되니 다시 건축을 생각했어요. 결국 가구를 만들게 된 것은 안정성 때문이었어요. 한옥을 지으려면 한 지역이 아니라 돌아다니면서 일을 해야하잖아요.
목공예가가 된 결정적인 이유는 2006년도에 제 은사님이신 조석진 선생님을 만난 것이에요. 제가 가구에 관심이 있다보니 조석진 선생님의 익산 제자 분이 하는 공방에서 잠깐 일을 하게 되었어요. 조석진 선생님이 너무 좋더라고요. 하루는 조석진 선생님이 그 공방을 찾아 왔어요. 선생님의 손이 너무 좋았던 것 같아요. 전통 가구를 만드는 분의 손을 닮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솜씨
전통에서 썼던 소재나 기법, 형태적인 부분에서 재미난 요소들을 가져다 제 나름의 방식으로 현대 가구를 만드는 게 저의 일이예요. 옛날의 가구들은 누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물성을 바탕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만드는 사람들의 생각이 조금씩 담겨요. 누군가가 저의 작업을 보고 ‘이런 생각을 가지고 했구나’ 하는 것이 느껴지거나 보인다고 하면 되게 기쁠 것 같아요. 그런 점에서 과거나 현재의 매개체 같은 느낌도 있죠.
가구와 같이 공예적인 것은 사람의 능숙함이 자연스럽게 표현되는 것 같아요. 이걸 보는 사람들의 안목도 있어야 알 수 있고요. 나무를 이해하면 할수록 더 많은 것들이 보이는 터라 직접 다뤄보는 것만큼 빠른 것은 없어요.
시작 자체는 기술적인 베이스로 시작했고, 전통 가구를 만드셨던 선생님 밑에서 배우다가 나중에는 또 현대 가구를 만드는 교수님의 작업을 보고 배웠어요. 이렇다 보니 전부 다른 건줄 알았는데, 완성도가 좋은 작업들은 다같이 놓고보면 느낌이 비슷해요. 그래서 한국 전통가구, 현대 가구 이렇게 나눌 것이 아니라 자연스럽게 경계를 넘나드는 것이 좋아요.
전통 가구에서도 장석이 적게 달린 형태를 선호하고, 단순한 형태를 좋아하죠. 그래서 옛날 것들을 다시 만들더라도 단순화해서 만드는 경우도 있고, 곡선이 많이 들어간 가구보다는 직선적인 가구를 만들어요. 작업을 하다 보면 표현하고자 하는 바를 드러내는데 적합한 나무들이 있어요. 나무라는 재료 자체의 희소성도 있고요. 무늬가 다양하기 때문에 좋은 무늬를 구했으면 어디에 꼭 써야겠다는 경우도 생기고, 나무의 생김새에 따라 만들고자 하는 작업물의 크기가 결정되는 부분도 있죠.
지역
익산에서 태어나 잠깐 나가는 것 말고는 거즘 한 곳에서 생활했어요. 부모님과 와이프 그리고 애들까지 모두 익산에 있죠. 임상리라는 시골에 살다보니 ‘집에 우물도 있었네~ 소도 타봤네~’ 이런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공방도 익산에 있었는데 한 10년 넘게 있다보니 불편한 부분도 있고, 무엇보다 저만의 공간을 갖고 싶어 옮기기로 결심했습니다.
지금 제가 있는 공방은 2021년 4월에 오픈했어요. 나중에 나무를 하나 심더라도 제자리에서 커가는 모습을 보고 싶었고, 먼지가 쌓여 뭔가 꾸며지는 것도 내 공간이었으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부지를 찾을때 대전, 서울, 원주 등 많은 고민을 했는데 공간을 나가면 힘들었고 자연스럽게 전주 근교로 가야겠다 생각했어요.
군대를 완주군을 관할하는 부대를 나왔어요. 동네 곳곳을 많이 알고 있었고, 지금 이 동네도 되게 좋더라고요. 안쪽에도 재미난 공간도 있고 조용해서 작업하기 좋고요. 농방 자리는 그냥 밭이었어요. 그래서 제가 짓고 싶은대로 지은 게 지금 건물이예요. 소재부터 형태까지 제 나름대로 설계한거라 많은 애착이가죠. 겉에 쓴 골강판이라는 소재도 재밌게 봤고, 전체적인 형태가 박공지붕인데, 그런 단순한 형태의 집을 좋아하는 터라 멀리서 보면 꼭 그렇게 생겼죠.
인사
은사님 손이 엄청 커요. 이 손은 비할 것도 안 돼요. 그 큰손을 가지고, 섬세한 작업물이 나오는 것이 놀라웠어요. 인생이 얼굴에도 표현된다고 하잖아요. 손으로 뭔가를 한 사람들은 분명히 손에 있을텐데 그 당시에 그 손이 그렇게 커보였어요. 엄청 커보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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