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색은 아무 것도 없지만
모든 게 다 들어가 있어요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신촌남1길 19
직 업 도예가
메 일 ko791220@naver.com
SNS @koyoceramic
운 영 문의 후 방문
참 여 2022 전라감영, 읽 년 읽다 展
#제주바다 #백색 #달항아리
만남일_2022.09.23 | 에디터_설지희 | 사진_손하원
만남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따뜻하지만 깨끗한 백색이었다. 그다음은 끝없이 정교하고 얇은 두께감이었다. 마지막은 아주 귀엽고 작게 그의 작품에 붙은 개구리였다. 어머니의 품과 청개구리 아들을 표현했다는 고용석 작가의 작품은 세련되고 정감 있다. 서울과 동경에서 기술을 연마하고 그의 고향 제주도에서 끊임없이 영감을 받아 자신 있게 자기만의 세상을 빚고 있는 그를 소개한다.
사람
저는 공방 ‘고요한 도자기’를 운영 중인 도예가 고용석입니다.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저는 도자와 관련이 없었어요. 제가 미대를 갈 거라는 생각도 안 하고 있었죠. 입시 미술을 하던 친구들로부터 미대는 성적이 낮아도 갈 수 있다는 말을 듣고, 고2 때부터 입시를 준비하여 중앙대학교 공예과에 진학하게 되었어요.
2학년 1학기 때 실수로 수강 신청을 해서 도자를 처음 마주하게 됐죠. 끊임없이 계속할 수 있을 만큼 좋았어요. 흙을 만졌는데 굉장히 따뜻하더라고요. 그리고 그때 만난 은사님이 저를 많이 아껴주셨거든요. 도자 작업이 나름 재미있고 선생님도 계속 예뻐해 주시니 계속한 거죠. 그래서 도자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나에겐 도자가 더 맞다는 생각이 더욱 선명해졌죠.
은사님은 굉장히 철학적이시고, 평화로운 분이세요. 닮고 싶었어요. ‘물레 안에 우주가 있다’고 알려주셨어요. 그때는 이해하지 못했는데, 요즘에는 알겠어요. 물레 안에 우주가 있더라고요. 아직도 연습해야 하고, 해도 부족하고 그러니까 또 해야 하고, 해도 해도 끝이 없는 거예요.
솜씨
2007년 대학원 졸업 후 조교 일을 했어요. 그때 일본 동경예술대학교의 후미오 시마다 교수님 작품을 본 적이 있었어요. 크기가 작은데 작품이 정교하고 깔끔했어요. 무게감이 압도적이었어요. 그때부터 제 작업 방식이 180도 바뀌었어요. 그 교수님을 따라 일본 유학도 갔었죠.
저는 예전에 물레의 매력이 손자국이라고 생각했어요. 달항아리도 무심하게 붙여서 마무리하는 것이 자연스러움이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제가 지금 주로 작업하는 달항아리는 정밀하게 가공해야 하는 기물이에요. 위아래를 붙여 작업해야하기 때문에 흙량 계산부터 형태적인 계산까지 치밀하게 작업해야 하죠.
달항아리 작업을 시작하면서 저의 흔적을 지우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깨끗이 흔적을 지운 기물도 가마에 구우면 흙살 깊이 베인 흔적들이 올라오죠. 이게 진정한 물레 자국이 아닐까 생각해요. 흙만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느낌인 것 같아 달항아리에서 벗어날 수 없죠.
제 작품에는 청개구리가 등장해요. 해녀 문화 콘텐츠 지원사업을 할 때 스토리로 풀어서 작업을 했어요. 해녀는 제주도 어머니상으로 봤고, 천방지축이지만 엄마 옆에 붙어사는 청개구리는 자식을 의미해요. 청개구리가 내 자화상 같은 모습이지만 사실 우리 모두의 모습이기도 해요. 결국 청개구리가 갖는 가장 큰 의미는 '후회'죠.
요즘은 달항아리의 미니멀리즘에 빠졌어요. 달항아리가 다 똑같이 보이는데 볼 때마다 새로운 매력이 있어요. 달항아리를 작업하다 보면 새로운 영감이 막 떠오르죠. 그래서 특별하게 작업할 것이 없을 땐 달항아리 만들면서 놀기도 해요.
지역
제 고향은 제주도입니다. 어렸을 때 저는 진짜 말썽꾸러기였어요. 시골에서 살다 보니 말 안 듣고 학교와 집에서 매일 혼나기 일쑤였어요. 마을 전체가 놀이터여서 마을 애들끼리 모여서 산이고 바다를 제집처럼 돌아다녔죠. 어렸을 때부터 바다에서 수영하고 다이빙해요. 바다를 그렇게 좋아했어요.
서울에 있는 대학교에 합격한 뒤로 제주도를 떠나게 됐어요. 낯선 곳을 여행하기 싫어하는 제 성향과 동시에 기숙사에 늦게 도착한 짐 덕분에 개강 첫 2주를 이불 하나 없이 살았죠. 외지 생활의 시작은 좋지 않았지만 대학 생활은 제 인생에서의 가장 큰 터닝 포인트가 되었어요.
인사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밤 10시에 자고 소설 집필과 달리기를 하는 삶의 루틴이 있다던 무라카미 하루키처럼. 고용석 작가는 출퇴근 시간을 정확히 지키며 도자 작업을 꾸준히 한다.
그에게는 두 가지 삶이 있다. 작업을 멈추지 않는 도예가의 삶과 은사님과 같은 좋은 스승의 삶이다. 삶에 균형을 맞추며 매일을 살아간다는 무게감을 아는 사람. 그 매일 속에서 물레차는 즐거움과 결의 오묘함을 아는 사람. 고용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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