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삼천동

장자요(臧甆窯)는 착한 그릇의 생활자기를 만듭니다

 전북 전주시 완산구 장자길 21

장자요 방호식


직 업   도예가

메 일   bhsik4342@hanmail.net

운 영   문의 후 방문

           010-4131-4342





#정직 #부부 #생활자기

만남일_2022.10.11

에디터_김지현 | 사진_손하원

장자요(臧甆窯)는 착한 그릇의

생활자기를 만듭니다


전북 전주시 완산구 장자길 21

장자요  방호식


직 업   도예가

메 일   bhsik4342@hanmail.net

운 영   문의 후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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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직 #부부 #생활자기

만남일_2022.10.11 | 에디터_김지현 | 사진_손하원

만남


김제의 공방 주소를 알려주셨다. 네비게이션을 찍고 가는데, 주변 경관이 매우 좋았다. 마음의 평안이 오는 자연환경이 나중에 꼭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했다. 감상을 하다보니 장자요의 김제 공방에 도착했다. 부부가 고른 공방의 연두빛 문이 산세와 어우러져 하나의 그림 같았다. 그림 속에서 방호식 선생님이 걸어나왔다.


사람


집사람하고 같이 도자 작업하고 있는 ‘장자요’의 방호식이라고 합니다. 저는 전주, 김제에서 작업하고 있고 올해로 약 27년 정도 됐어요.

원래 꿈은 산장이었어요. 조그마한 산악회를 예전에 했었거든요. 친구들하고 태백산부터 계속 다니다가 공주에 있는 동학사가 너무 좋은 거예요. 그래서 동학사에 들어가서 산장을 하려다 시기가 안 맞아서 카페를 하게 됐어요. 그곳에 살려면 거기 근처에서 뭐 호구지책은 있어야 되잖아요.

카페를 하니까 이제 도자기를 맞춰야겠다 싶어서 간 게 도예촌이에요. 처음에는 도자기를 맞추다가 만들어보고 싶더라구요. 그때 좀 이것저것 다 해 보고 싶었어요. 제가 젊은 나이니까 영상정보학, 문예창작과 등 다양한 분야의 선생님들이 소개 시켜줬어요. 그 일환으로 도예촌을 가게 됐죠. 너무 좋았어요.


처음 흙을 만졌는데, 나를 만지는 것 같더라구요. 흙이 내 피부나 뭐 이런 거 같은 느낌이 들더라고요. 예전에 산업디자인과도 다녔었는데 도구를 안 쓰고 컴퓨터로만 작업하더라고요. 직접 오감이 손끝에 전해지는 것이 좋았고, 유일한 것이 도자기였어요.


솜씨


물레 잘 차는 걸로 제가 인정하는 사람은 우리 집사람이에요. 당시에 내가 학교에서 물레를 300회 차는 사람을 처음 봤어요. 중요한 한 가지 사건이 있었어요. 차 도구 100개를 업체에 납품을 했는데, 50개를 싹 빼는 거예요. 아내 것만 냅두고, 다 내가 만든 것만 빼더라구요. 기분이 상하잖아요. 그때 생각했죠. 아직 멀었구나. 무조건 정직해야겠다는 생각도 들더라구요. 진짜 제 은사라고 하면 저희 집사람이에요.


가마 불에 한 번 들어가면 16시간씩 떼야 해요. 오래 불을 떼는 게 힘들긴 하지만 철(鐵)하고 비슷하게 담금질을 계속하면 할수록 자화가 잘되는거예요. 그래서 굉장히 단단해지죠. 게다가 생활식기 1cm의 그 휘어짐이 얼마나 식탁, 주방에서 중요한 줄 몰라요. 그걸 젊은 셰프들에게 많이 듣고 참고해서 만들어요.


그리고 흙도 백자토 원토를 받으면 정제되기 전 그 속에 산청토가 들어가 있어요. 그래서 더 신경을 쓰죠. 생활식기를 만들 때 깨지지 않는 단단한 흙을 사용하려고 하고 중요한 유약은 만들어 쓰려고 해요. 비싼 돈 주고 샀는데 쉽게 깨지고 그러면 안 되잖아요.


생활자기는 강도가 제일 중요해요. 장자요가 지금까지 작업을 할 수 있는 것은 강한 생활자기를 만들기 때문이에요. 가져갔던 사람이 금방 깨지거나 약하다는 소리를 하면 추가 구매는 일어나지 않아요. 여러 음식도 담아보고 설거지도 해 본 뒤인 보름 정도 지났을 때 평가를 해 달라고 그러죠.

지역


저의 고향은 서울이에요.  6학년 때 청주에서 전학을 가서 대학교 시절까지 있었어요. 그리고 20살 중반에 동학사로 넘어가서 카페를 했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집안이 거의 전멸하다시피하는 바람에 재산을 다 털어버리고 카페도 정리했어요. 


전주는 지금까지 제가 성장하게 한 곳이에요. 어느 날 어떤 분이 도자기를 끝까지 할 거면 백제예술대학교를 가보라고 소개해주더라구요. 그때는 주변 선생님들이 제가 생활할 수 있게 도자기를 팔아주고, 그 돈으로 학비도 낼 수 있었어요. 그렇게 전주로 떠났어요. 

 

백제예술대학교에 입학하고 제가 1학년일 때, 그리고 집사람이 2학년일 때 결혼을 했어요. 저희 부부는 고산에서 월세 5만 원 방을 들어가는데, 마구간 같은 데를 작업실로 개조를 했어요. 저희 형제들한테 받은 게 물레 2대, 1년 동안 쓸 수 있는 흙을 갖다 놓고 거기서 시작했어요. 고산에 있다가 경천으로 넘어와서 석 달, 넉 달 동안 집을 지었죠.

김제는 저에게 이제는 제발 공부 좀 하라고 집사람이 선물해 준 곳 같아요. 여기서 도자기 공부도 하고, 사람 공부도 좀 하고 그랬죠. 50세가 넘으면 지천명이라고 그러는데, 이게 내가 왜 왔을까라는 하늘의 뜻이 있을 거 아니에요. 그게 그냥 정직하게 살라는 뜻인가 봐요.



인사


전주의 장자요 공방은 김제와는 또다른 느낌이다. 부부의 작업실이자 생활공간이었는데, 사모님이 만드신 도자인형이 그렇게 아기자기할 수 없다. 부부가 함께 만들어가는 공간이니 만큼 그들의 세월이 느껴졌다. 공간 구석구석에 있는 도자기들과 오래된 가마가 그것을 방증했다. 정직을 지켜온 그 세월만큼이나 부부가 이루어낸 장자요의 단단함이 곳곳에서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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