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저의 고향은 서울이에요. 6학년 때 청주에서 전학을 가서 대학교 시절까지 있었어요. 그리고 20살 중반에 동학사로 넘어가서 카페를 했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집안이 거의 전멸하다시피 하는 바람에 재산을 다 털어버리고 카페도 정리했어요.
전주는 지금까지 제가 성장하게 한 곳이에요. 어느 날 어떤 분이 도자기를 끝까지 할 거면 백제예술대학교를 가보라고 소개해주더라구요. 그때는 주변 선생님들이 제가 생활할 수 있게 도자기를 팔아주고, 그 돈으로 학비도 낼 수 있었어요. 그렇게 전주로 떠났어요.
백제예술대학교에 입학하고 제가 1학년일 때, 그리고 집사람이 2학년일 때 결혼을 했어요. 저희 부부는 고산에서 월세 5만 원 방을 들어가는데, 마구간 같은 데를 작업실로 개조를 했어요. 저희 형제들한테 받은 게 물레 2대, 1년 동안 쓸 수 있는 흙을 갖다 놓고 거기서 시작했어요. 고산에 있다가 경천으로 넘어와서 석 달, 넉 달 동안 집을 지었죠.
김제는 저에게 이제는 제발 공부 좀 하라고 집사람이 선물해 준 곳 같아요. 여기서 도자기 공부도 하고, 사람 공부도 좀 하고 그랬죠. 50세가 넘으면 지천명이라고 그러는데, 이게 내가 왜 왔을까라는 하늘의 뜻이 있을 거 아니에요. 그게 그냥 정직하게 살라는 뜻인가 봐요.
인사
전주의 장자요 공방은 김제와는 또다른 느낌이다. 부부의 작업실이자 생활공간이었는데, 사모님이 만드신 도자인형이 그렇게 아기자기할 수 없다. 부부가 함께 만들어가는 공간이니 만큼 그들의 세월이 느껴졌다. 공간 구석구석에 있는 도자기들과 오래된 가마가 그것을 방증했다. 정직을 지켜온 그 세월만큼이나 부부가 이루어낸 장자요의 단단함이 곳곳에서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