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많은 사람들이 공명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 좋은 작품이라 생각해요

극단 신명 박강의


직 업   연출감독, 극작가

메 일   kang-eui@hanmail.net

운 영   문의 후 방문


참 여    2022 무형유산 특별공연〈장인의 발걸음〉



#신명 #학생운동 #장인의발걸음 #공명 #행복

만남일_2022.09.13

에디터_설지희 | 사진_손하원

많은 사람들이 공명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 좋은 작품이라 생각해요


 광주광역시 북구 삼정로71

극단 신명  박강의


직 업   연출감독, 극작가

메 일   kang-eui@hanmail.net

운 영   문의 후 방문


참 여   2022 무형유산 특별기획 공연, 장인의 발걸음

#신명 #학생운동 #장인의발걸음 #공명 #행복

만남일_2022.09.13 | 에디터_설지희 | 사진_손하원


만남


박강의 감독님의 작업실은 담백하게 꾸며진 가정집 모습이었다. 소중한 인연과 마주앉을 만한 크기의 테이블과 따스한 차담을 나눌 수 있는 테이블이 나란히 배치되었다. 그곳에서 색이 깨끗하고 향이 깊은 동방미인 차를 처음 마셔보았다. 강아지풀에서 진짜 행복한 삶을 고민하고 실천하고 있는 박강의 연출감독님의 삶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사람


극단 ‘신명’의 전 대표이자 연출가인 박강의입니다. 원래는 동시 통역관을 꿈꿔왔어요. 학창시절 집안이 시끄러워 비행기를 타고 집을 떠날 수 있는 직업을 꿈꿨죠. 외국어, 특히 순수 러시아어를 전공하고 싶었지만, 선생님이셨던 아버지의 반대 때문에 대학은 불어교육과로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84학번이에요. 주로 학생 운동을 하며 대학 생활을 보냈죠. 학생이라면 응당 해야하는 일이라고 생각해 민속문화연구회 탈반에 들어가 학생 운동을 했죠. 제가 졸업할 때 미발령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고, 제 원래 꿈은 선생님이 아니었기 때문에 자연스레 사회 문화 운동으로 시선을 돌려 88년에 극단 ‘신명’에 들어가게 되었어요.

 

저에게 ‘신명’은 내가 살아가는 방식을 만들어준 곳이기도 하고 큰 좌절을 맛보게 한 곳이기도 해요. ‘신명’에서 대표를 맡던 중 2000년에 난소암으로 크게 수술을 받은 적이 있어요. 병원에 퇴원하고 나서 일과는 이랬어요. 새벽 4시에 일어나서 국선도를 하고 수영을 하고, 산책을 하곤 했죠. 그렇게 걷고 있다가 다 말라빠진 강아지풀 하나가 보도블록 사이에 쫙 있더라고요. ‘네가 거기 있었구나, 그렇게 생명의 싹을 틔워서 남이 봐주든 봐주지 않든 너는 거기에 살고 있었구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눈물을 팍 터졌어요. 나를 보는 거 같았어요. 나를 돌보지 않고 살아가는 나를 보는 기분이었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행복했을까? 이제는 정말로 내가 행복하게 살아야지 하는 생각으로 살고 있어요.


솜씨


제가 처음으로 책임지고 연출을 맡은 <일어서는 사람들>부터 <꽃등 들어 님 오시면>, <이팝>, <장인의 발걸음> 등 여러 작품의 극작과 연출을 맡아오며 현실의 사건에 민속적인 것을 더해 작품을 만드는 것에 익숙해졌어요. 6.25 전쟁의 이야기를 진도의 씻김굿과 다시래기로 풀어간 <꽃등 들어 님 오시면>과 위안부 이야기를 고창농악으로 풀어간 <이팝>이 대표적인 작품이죠.

 

이번에 프롬히어와 함께 작업한 <장인의 발걸음>은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두 무형문화재들 사이에 공통적으로 보이는 ‘순수함’에 초점을 맞춰 연출한 작품이에요. 자신의 삶을 인내하고 이끌어 온 분들한테서만 보이는 해맑음과 작업에 대한 자신감 덕분에 기분 좋게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었어요.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아닌 작품을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공명 되는 작품이 좋은 작품이라 생각해요. 저는 연출가로서 약간의 신파와 서사가 균형 있게 섞어 개인의 한 측면을 강조하기보단 여러 사람들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여러 측면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가고자 하죠.

 

‘신명’을 통해 큰 좌절을 맛보기도 했지만 제가 고민하는 내용들을 작품으로 표현할 수 있어 좋았어요. 저는 여전히 제가 지향하고자 하는 문화예술 활동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하는 중이지만, 제가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을 때까진 제 나이에 맞게 부끄럽지 않은 작품 활동을 이어나갈 게획입니다.

지역


저는 1966년 광주광역시 우산동에서 태어나 2018년까지 쭉 광주에 살았어요. 아버지가 대학 시절부터 우산동에 계시며 저희를 우산동에서 낳으셔서 우산동에 완전 뿌리를 내렸다고 볼 수 있죠.

 

지금은 광주가 많이 커져 우산동은 광주 변두리 쪽에 있지만 당시 우산동은 시내권하고도 가깝고 담양으로 갈 수 있는 길목에 있었어요. 그 때문에 5.18 민주화운동 때 군인들이 왔다갔다 하는 것을 많이 접하게 되었죠.

 

광주에 있던 ‘신명’ 사무실을 담양으로 옮겨서 한 십여 년 정도 있다가 다시 광주로 옮긴지 3~4년 정도 되는 것 같네요. <술래소리>라는 작품은 담양으로 사무실 이전 한 후 만들었던 첫 작품이에요. 언제 사무실을 이전했는지 숫자로 물어보면 모르겠다고 대답하겠지만, 작품은 바로 생각이 나더라고요. 신명에서 작품을 만들고 공연 했던 것이 제 생활의 중심이었으니까요.



인사


제 평생의 30년을 채워줬던 극단 ‘신명’이 2022년 올해 40주년을 맞이했어요. 저에게 ‘신명’은 내가 살아가는 방식을 만들어준 곳이기도 하고 큰 좌절을 맛보게 한 곳이기도 해요. ‘신명’에서 대표를 맡던 중 2000년에 난소암으로 크게 수술을 받은 적이 있어요. 그 이후로 행복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어요. 좋은 작품을 위해서는 항상 즐거울 수만은 없지만 작업을 하는 순간들을 행복하게 받아들이고 살아가야겠다고 다짐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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