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문화유산이 서울에서 전하는 위로와 공감
하루가 다르게 코로나19 확진자가 증가하고 있다. 7월 말부터 코로나19 4차 유행에 진입했고, 수도권을 중심으로 방역 4단계를 지속하고 있다. 빠듯한 학교·직장 생활. 끝나고 가족과 친구들과 함께하는 저녁식사. 이 일상의 낙이 사라진 요즘이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는다. 코로나로 지친 나의 일상을 돌보는 동시에 지역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체험전시가 있으면 어떨까. ‘문화역서울 284 RTO 365 - 문화장(場)’에서 전주 문화유산을 경험하는 동시에 위로와 공감의 전하는 <나에게 보내는 서신> 프로그램을 8월 13일부터 22일까지 진행했다.
나만을 위한 시간,〈나에게 보내는 서신〉
‘문화역서울 284 RTO 365 - 문화장(場)’은 지역 문화와 예술적 자산을 소개하는 프로젝트다. 해당 장소는 옛 서울역 공간으로, 1925년부터 2004년까지 각 지역 사람과 물자가 모이던 곳이다. 그 맥락을 이어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에서 지역 문화예술을 소개하고 교류하는 장으로 만들기 위해 기획하였다. 전주 문화유산 체험전시는 ‘문화장(場)’에 선정된 9개 단체 중 하나인 썰지연구소가 선보였다.
〈나에게 보내는 서신〉의 첫 번째 취지는 코로나19의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 나만의 오롯한 시간을 갖게 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그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전주 문화유산을 향유하는 경험을 전한다. 참여자는 나에게 몰입할 수 있는 공간과 서신키트, 사운드에 둘러싸인다. 서신키트는 전주한지로 만든 편지지와 연필, 연필깎이, 지우개가 들어있다. 더불어 한국 발효차 청태전(靑苔錢)과 조선 왕실의 향, 부용향(芙蓉香)을 동봉하였다. 음악은 방짜유기로 만든 악기 싱잉볼[경자, 磬子]을 중심으로 결성한 전주 밴드 ‘세악사 프로젝트’가 작곡한 곡들로 편안한 소리를 전한다. 해당 공간에서 낯설고 어려운 문화유산이 아닌 일상의 문화유산으로서 나에게 몰입하는 위로와 공감의 경험을 가진다.
전주한지 편지지를 담은 ‘서신키트’
한지는 서신, 부채, 창호지 등 무언가를 기록하거나 볕과 바람을 막기 위해 사용해왔다. 고품질의 한지는 좋은 물과 닥나무, 솜씨 좋은 장인의 결합으로 탄생한다. 예부터 전주는 맑은 물이 넘치는 공수내 흑석골을 중심으로 우수한 한지가 생산되었다. 또한 시서화를 즐기는 양반이 많았기에 좋은 한지를 만드는 곳이면 줄을 서서 살 정도로 수요가 풍부했다.
2017년에는 전주시에서 30년 이상 한지를 뜬 장인 강갑석, 김인수, 김천종, 최성일 4명을 전주 한지장으로 선정하였다. <나에게 보내는 서신> 의 ‘서신키트’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한지편지지는 1975년부터 한지를 뜬 용인한지 김인수의 한지에 고감한지의 인쇄·재단이 더해져 탄생하였다.
요즘 손 편지로 마음을 전하는 일이 드물어졌다. 이번 체험에서는 직접 연필을 깎고, 전주한지 위에 나의 마음을 꾹꾹 담아본다. 서신키트에 동봉한 연필은 어렸을 적 한 번쯤 써봤을 대표 국산연필 더존이다. 더존은 1949년부터 국산재료로 연필을 생산하고 있다. 향나무와 하이믹심을 사용하여 부드럽고 깔끔한 필기감으로 오래도록 사랑받았다. 직접 서신을 써보면서 잊고 있었던 촉감을 되살려볼 수 있다.
서신 쓰기를 돕는 감각 : 청태전, 부용향, 싱잉볼
전주한지 편지지, 더존 연필과 함께 서신키트에 동봉된 물건은 발효차 청태전과 전통향 부용향이다. 차[茶]는 몸을 따뜻하게 하고 정신을 맑게 만든다. 우리는 무언가에 몰입하기 위해 차를 마시거나, 차를 마시는 순간 자체를 음미한다. 발효차는 온몸에 흩어져있는 열기를 모아 몸과 마음에 온기를 더한다. 발효차 청태전은 푸를 청(靑), 이끼 태(苔), 돈 전(錢)을 쓴다. 이 차를 발효할 때의 모습이 푸른 이끼가 낀 엽전처럼 생겼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삼국시대부터 전래되었다고 알려진 우리나라 고유의 발효차로, 17년 경력의 전주 다인(茶人)이 엄선한 차이다.
향(香)은 누군가를 위하거나 공간을 정화할 때 사용한다. 제사를 지낼 때나, 밖을 나서기 전 향을 입히듯 말이다. 서신키트에 동봉된 부용향은 조선 왕실이 사랑한 향으로 알려져 있다. 왕의 행차나 혼례는 물론 공부할 때도 피워 공간을 정화하거나 정신을 맑게 도왔다. 퇴계 이황도 제자에게 부용향을 선물할 만큼 집중력을 높아주기 탁월하다고 알려졌다. 서신키트에 담긴 부용향은 『동의보감』에 기록된 10가지 한방 재료와 비율로 부용향을 재현한 것으로 ㈜케이센스에서 제작하였다.
어떤 소리[音]가 들리나에 따라 정신이 집중될 수도 흩어질 수도 있다. 싱잉볼은 경자 또는 경쇠라고 하는 맑고 깊은 파동을 가진 악기로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전역에 쓰는 악기이다. 막대로 쳤을 때 울리는 파동이 마음을 차분하게 하여 요가 및 명상을 하는 이들에게 필수 아이템이다. 목탁과 같이 사찰에서 기도할 때 사용하며, 무속에서는 신을 부를 때 쓰인다. 이번 체험전시에는 전주 뮤지션 밴드 ‘세악사 프로젝트’가 싱잉볼과 거문고, 피아노로 평온한 음악을 전하였다. 전시 공간의 한 가운데 전북무형문화재 제43호 방짜유기장 이종덕 보유자가 손수 두드려 만든 싱잉볼을 전시하여 그 오묘한 울림을 시각적으로도 표현하였다.
참여자들의 후기 : 나에게 전하는 칭찬 한 마디
〈나에게 보내는 서신〉은 사회적 거리두기를 준수한 간격으로 책상 5개를 배치하였다. 해당 체험은 온라인 예약으로 진행하였으며, 코로나로 전시장을 방문하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서신키트 배송 옵션도 추가하여 참여의 폭을 넓혔다. 코로나19 예방지침을 준수하여 열흘간의 체험기간을 무사히 마쳤다.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프로젝트인 만큼 소수의 참여자들이 꾸준히 방문하였다. 체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전주한지와 연필, 발효차, 전통 향, 싱잉볼을 경험하는 시간을 가졌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모든 경험이 의미 있는 추억으로 남는 것이다. 일상의 문화유산은 낯선 것이 아닌 수많은 기억 사이에 익숙하게 자리 잡는 것이다. 서신을 다 쓴 사람은 차분히 후기를 쓰는 자리로 이동한다. 후기는 ‘나에게 전하는 칭찬 한 마디’를 포스트잇에 작성한다. ‘내 삶과 나 자체를 연구하는 사람이 되자’고 쓴 사람도 있고, ‘오직 나를 위한 알찬 하루를 보낸 것’이라고 쓴 사람들도 있었다.
나가는 길에는 작은 부스를 마련하여 전주 공예품을 만나볼 수 있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28호 선자장 김동식 보유자의 합죽선과 전북무형문화재 제43호 방짜유기장 이종덕 보유자의 경자와 유기 공예품들, 전북무형문화재 제45호 우산장 윤규상 보유자의 지우산, 전주 솟대장이 김종오의 전주솟대디퓨저, 전주 가죽공예가 신평화의 가죽필통 등을 전시하였다. 자연스럽게 전주 문화유산을 보고, 듣고, 쓰고, 만지는 과정을 가졌다.
〈나에게 보내는 서신〉의 첫 번째 취지는 코시국 속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 나만의 오롯한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두 번째는 그 맥락 속에서 자연스럽게 지역 문화유산을 향유하는 경험을 전하는 것이다. ‘세대와 세대를 거쳐 전해지는 문화’라는 뜻의 문화유산이 어렵고 정체된 것이 아닌 즐거운 추억 속 한 켠에 자리 잡는 것임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