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잃은 골목을 되살릴 수 있는 자양분
전북 전주시 완산구 풍남문4길 15-13
직 업 제과점 사장님
입 문 1972년
운 영 08:00 ~
#고물자 골목 #추억과 애정 #한과
출처_도시살림 vol.04 122P~138P
에디터_박은
※ 이 기사는 잡지〈도심살림 vol. 04〉에 실린 보배제과 이종희 기사 일부를 발췌하여 작성되었습니다.
1972년부터 전주 남부시장 옆 고물자 골목을 지켜온 보배제과 이종희 사장님은 그 시절 골목을 “사람들로 북적였던 곳”이라고 회상했다. 1973년까지 이 골목 끄트머리에는 버스 배차장이 있었고, 임실, 진안, 고창으로 가는 시외버스가 이곳에 멈췄다. 자연스레 사람들이 모이면서 사장님이 운영하던 보배제과도 호황을 누렸다. 종업원 7명과 사장님 부부가 함께 일을 해도 수량 맞추기가 빠듯할 정도로 정신없이 바빴다. 그렇게 화려한 시절을 보냈지만, 이제는 북적였던 분위기조차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고요한 골목이 돼버렸다.
수십 개의 가게가 문을 닫았고, 사람들의 발걸음도 뜸해졌다. 그럼에도 한결같이 골목을 지키고 있는 보배제과 이종희 사장님. 그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떠나버린 사람들
서울에서 전주로 시집을 와서 전주도, 이 골목도 몰랐어요. 당연히 과자(강정) 만드는 방법도 몰랐는데 그래도 먹고는 살아야 하니까 더듬더듬 일을 습득해서 만들기 시작했어요. 당시에 과자를 잘 만드는 종업원이 하나 있었는데, 그 종업원한테 만드는 방법을 배웠을 정도니까 말 다 했지. 이제 남은 집이라곤 신진미장원이랑 여기밖에 없어요. 사람들도 이곳에 오질 않아.
그때는 외국 구제품 팔던 상인들이 이 골목 끝에서부터 가득했어요. 지금은 그분들도 다 돌아가시고, 사람들도 하나, 둘 떠났어요. 여기에 남은 사람들 반절 이상은 뜨내기라고 할 수 있어요. 과자 만들던 종업원들도 모두 뿔뿔이 흩어졌으니까. 저 밑에 오성제과도 같이 과자 만들던 식구였는데 지금은 가게 차려서 나갔죠.
골목의 추억
이 골목에서 과자 만드는 방법을 배웠으니까 멀리 갈 필요도 없었어요. 가게는 4번 정도 옮겼는데 계속 이 골목 안에서 움직였어요. 굳이 떠날 필요가 없었거든요. 옛날에는 어르신분들이 맛있다고 와서 자주 사 먹었고, 또 서울 사람들도 명절 때마다 과자 사 먹으러 왔어요. 전주 사람들보다는 외지 사람들이 우리 집 과자를 더 좋아해요. 그 당시(7~80년대)에는 서울, 인천, 대전 등 타지에서 도매로 가져갔을 정도니까요. 쌀·깨 과자가 보편화되면서 손님이 줄기 시작했는데, 코로나19 겪고 손님이 뚝 끊겼어요. 이 골목에서 희로애락을 다 겪었기 때문인지 다양한 감정이 생기는 것 같아요. 아저씨가 최근에 돌아가셨거든요. 이후에는 혼자서 모든 일을 해야 하니까 체력적으로 힘도 들고, 수입도 많이 줄어서 그런 건지 사실 골목에 대한 애착 같은 건 없어요. 나이도 많이 들어서 언제든지 이 골목을 떠날 수 있죠.
마지막 바람
딱히 취미 생활도 없고, 집에만 있으면 늘어지니까 지나가는 사람들이라도 구경하려고 가게에 나와 있어요. 그런데 골목에는 하루에 한 50명이나 다니는 것 같아요. 그 정도로 이 골목이 너무 조용해. 집마다 사람들이 살고, 골목을 오가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제는 정말 텅 비어버렸죠. 솔직하게 말하면 이 골목에 대한 희망이나 기대는 없어요. 시골 사람들이 남부시장으로 나와서 장을 보고 했을 때만 해도 희망이 보였던 곳이었는데, 지금은 동네마다 슈퍼가 있고 큰 마트들이 즐비한데 누가 시장까지 나와서 장을 보겠어요. 그렇기에 이곳에 더 이상 발전할 수 없어요. 시골 어르신들도 마을에서 충분히 물건을 조달할 수 있으니까 더 장사가 안되죠. 그래서 저는 그저 건강하게 지내고, 가게도 체력이 될 때까지만 하고 싶어요.
그리고 이 골목에서 뭔가를 새로 시작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솔직한 말로 말리고 싶어요. 여기서 새로 시작한다고 하면 완전히 굶어요. 골목이 살아날 수 있는 방법은 건물을 멋지게 지어서 카페나 하면 모를까… 사람들이 여기에 왔을 때 볼 것이 있어야 하는데 볼 게 없으니까 오지를 않죠. 그런데 멋진 카페라도 하나 있으면 오고 가면서 눈길을 사로 잡으니까 다음에라도 올까 싶어요.
‘희망성’을 찾지 못하겠다는 고물자 골목을 묵묵히 지키던 이종희 사장님은 사람들로 북적였던 골목의 어느 한순간을 잊지 못하는 듯 보였다. 더 이상 과자를 만드는 일도, 기대되는 일도 없다고 무심하게 내뱉었지만, 그녀의 어감에는 골목에 대한 애정이 듬뿍 묻어났다.
40년 넘게 골목을 지켜온 의리와 정. 그리고 세월 앞에서 변해버린 골목과 풍경을 반추하며 그가 꺼낸 기억들은 어쩐지 희망을 잃은 골목을 되살릴 수 있는 자양분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렇기에 다시 이 골목이 사람들로 북적일 때까지 이종희 사장님이 건강하길 간절히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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