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남원시

억지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 맡기는 거예요

 전북 남원시 목공예길 10-15

목공예가 이건무


직 업   목공예가

유튜브   한여루의 목선반교실

SNS    @Leeg7070

운 영   문의 후 방문





#목공 #우드터닝 #우드카빙 #남원

만남일_2024.01.28

에디터_윤소영 | 사진_이정준

억지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연에 맡기는 거예요


전북 남원시 목공예길 10-15


나무그리기

목공예가  이건무


직 업   목공예가

유튜브  한여루의 목선반교실

SNS     @Leeg7070

운 영    문의 후 방문 



#목공 #우드터닝 #우드카빙 #남원

만남일_2024.01.28 | 에디터_윤소영 | 사진_이정준

만남


이건무 목공예가 작업실은 도시의 번잡함에서 벗어난 한적한 마을에 위치해 있었다. 작업실로 가는 길목에는 목재들이 즐비해 있었다. 작업실은 나무의 향기로 가득 차 있었고, 곳곳에 놓인 작품들은 그 공간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었다. 화로에 둘러앉아 장작 타는 소리를 배경 삼아 그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사람


1970년 7월 1일생 이건무입니다. 저는 중학교 때 미술을 하고 싶었어요. 학교 시간에 내가 관심 있는 과목 외에는 수업을 듣기 보다는 책에다가 낙서를 많이 했어요. 미술 시간에 풍경 스케치를 그렸는데 잘 그렸었나 봐요. 미술 학원 다니던 미술부 선배가 “너 미술부 들어오라”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미술부에 들어가려면 학원을 다녀야 한대요. 학원비를 알아보니까 우리 집에서는 학원비를 대줄 수 있는 금액이 아니었어요. 나는 미술부 안하겠다 했죠.

 

20살에 우연히 우드버닝(Wood-Bruning), 흔히 낙화(烙畫)라고 인두로 그림 그리는 걸 보게 되었어요. 제대로 하려면 3년 정도 걸린다는 말에 고민하다가, 우드카빙으로 관심이 이어졌어요. 남원이 제 고향이니깐, 상대적으로 접근성이 좋았거든요. 마침 우리 아랫마을에 목기 공방이 있었어요. 일당을 조금만 줘도 되니, 몇 시부터 몇 시까지 깎는 것을 연습할 수 있도록 해주겠냐고 협상을 봤죠. 그렇게 우드카빙을 시작했죠.

솜씨


1992년 1월에 영장이 나와서 주특기를 ‘목공’이라고 써놨어요. 그렇게 목공병을 하면서 이것저것 만들었죠. 본격적인 목공일을 결심했던 거 같아요. ‘내가 공방을 차려서 해야겠다’고 생각했 거든요, 2000년에 들어서면서, 인터넷이 보급화되니 외국에서는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해지더라고요. 우드 터닝(Wood Turning)을 검색해서 찾아보니, 저는 우물 안 개구리더라고요. 영상과 정보를 찾아보며 칼을 직접 만들기 시작했어요. 칼 단조나 그라인더 작업은 제가 자신이 있었 거든요. 목수 중에서는 철을 잘 다루는 편이죠. 칼 연구를 계속하고 있어요. 요즘에는 개량을 해가며 인스타그램에 올리니 반응이 좋아서 판매도 하고 그렇습니다.

 

우드 터닝은 나무를 아주 얇게 가공해서 뒤틀리게 변형을 줘요. 한 마디로 자연에 맡기는 거예요. 내가 억지로 구겨서 만드는 게 아니고 나무가 자라면서도 스토리가 있잖아요. 곱게 자라는 나무가 있는 반면에 자연의 자연 환경에 따라서 굉장히 고생해서 큰 나무들도 있잖아요. 사연이 많은 나무일수록 많이 찌그러지고 어떻게 변화될지 몰라요. 그래서 그 결과물을 자연에 맡기는 거죠.

 

제자 양성도 하고, 인터넷 활동을 통해 많은 커뮤니티를 운영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제 목표는 2025년 내에 개인전을 하겠다는 거예요. 전시의 주제는 ‘홀’이에요. 영화 인터스텔라를 보고 나서 블랙홀이라는 작품을 만들었어요. 제가 과학도는 아니지만 이 주제로 작품을 만들어보면 좋겠다고 생각해서 구상을 하게되었어요. 제 작품 중에 구 안에 구가 갇혀 있는 작품들이 있거든요. 그런것들을 만들고 구상을해 보니 ‘홀’이라는 주제랑 맞는 것 같더라고요. 개인전은 아직 안 했지만 홀2020, 홀2021년 시리즈 작품들이 있습니다.


지역


남원이 고향입니다. 처음 공방은 남원시 갈이 교육과 함께 시작했죠. 창조지역 사업으로 해서 시작했는데, 25평 짜리 공방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장비가 많이지니깐 1년 정도 있다가 다른 곳을 알아보기 시작했어요. 교육은 빨리 시작해야 하고, 공간 알아볼 시간은 많지 않으니 빠듯하게 알아봤죠. 그렇게 이곳에 2015년 9월에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제 또다른 공간은 인터넷 카페라고 할 수 있죠. 2000년대 초반 ‘통나무 사랑과 공예’라는 카페가 가장 컸었어요. 부산에 목공방하시는 분이 만든 게시판 같은 곳이었죠. 그때부터 활동을 하면서 조금씩 이름을 알렸고요. 지금은 ‘우드 워커’라는 네이버 카페가 제일 규모가 있죠. 2010년대부터 많이 올리기 시작하면서 활발히 활동했었죠.



인사


개인전을 1회로 끝나는 건 아니고 계속 한 10년 정도 한 65세까지는 꾸준히 할 생각이에요. 국내에는 아직 우드 터닝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작가가 거의 없어요. 더 늦기 전에 그래서 뭐 그런 게 아까 얘기했던 뭐 에른스트 갬펄(Ernst Gamperl)이나 파스칼 우데(Pascal oudet) 작가처럼 그런 활동을 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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