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함께,
온전한 소리꾼으로 바로 서고 싶어요
전북 남원시 어현동 37-40
직 업 소리꾼
이메일 yunyj813@naver.com
#소리 #소리꾼 #남원
만남일_2024.02.07 | 에디터_설지희, 김민진
사진_이정준, 인터뷰이 제공
만남
윤영진 소리꾼의 아버지는 최연소로 국가무형유산 판소리(적벽가) 보유자 윤진철 명창이다. 가업을 잇는다는 점에서 주위의 긍정적인 관심이 모아진 것과 별개로, 윤영진 소리꾼에게 아버지는 존경하는 예인이자 넘어서야 할 존재이기도 하다. 복합적인 감정을 안고서도 아버지의 소리가 좋아 그 길을 이어가고 싶다는 그를 만나봤다.
사람
저는 93년생이고, 광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지금은 민속국악원에 소속되어 남원에 정착했습니다. 아버지께서 소리를 하셔서 저도 자연스럽게 북을 잡고 노래를 따라하게 됐는데요. 하다보니 어려운데, 그 어려운 것을 해내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존경심도 느끼고, 아버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은 그런 욕심도 생겼죠.
저는 고등학교 졸업한 이후로 레슨 보다는 음원 듣고 혼자서 공부했어요. 음원을 듣고 홀로 소리연습을 하는 것은 아버지가 하셨던 방식이예요. 전통 소리를 배우는 것에 감사하면서 ‘아버지가 하신 것처럼 저도 할 수 있어요’ 하는 마음으로 연습에 매진하는 거 같습니다.
솜씨
저만의 스타일을 아직 찾고 있는 중이긴 한데, 대학에 가면서 연기하고 몸을 쓰는 부분을 보완하려고 노력 했었어요. 그런데 점차 연차가 쌓이면서 오히려 제가 놓치고 있었던 게 소리더라고요. 아버지께서 전통 소리를 워낙 지향하시고 인간문화재가 될 정도로 소리에 진심이신 분이기 때문에 소리의 전달력이나 공력이 부족하면 신경이 쓰이고 이것들을 더 연습해야겠구나 싶었어요.
조금 더 나다운 것을 있다면 창극이 아닐까 싶어요. 제 춤도 많은 분들이 좋게 봐주시다보니 저도 춤에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기억에 남는 작품으로 꼽는 것은 제가 대학교 4학년 때 주연 역할을 했던 모돌전인데요. 〈노트르담드 파리〉 아시나요? 그런 곱추의 사랑 이야기예요. 그렇게 모나고 자기한테 돌을 던지는 삶을 살아왔던 캐릭터를 보면서 저랑 비슷한 면이 많다는 걸 느꼈던 것 같아요.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인턴으로 인연을 맺었던 민속국악원의 창극단 단원이 되면서 아버지 소리를 좀 더 공부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하면 할수록 소리는 어렵더라고요. 결국엔 또 소리인 것 같아요. 그러다 아버지가 걸어오셨던 길이 보이는데, 막연한 사명감 때문이 아니라 그 아버지 소리가 좋아서 계속 그렇게 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앞으로 평생의 고민은 어떻게 하면 아버지처럼 소리를 잘할 수 있을까, 아버지처럼 소리 잘하고 싶다 이 마음이죠.
지역
아버지가 정말 풍류를 즐기는 예인이셔서, 어릴 적 집에는 늘 손님이 계셨어요. 일주일 내내 10명, 15명씩 오는 경우도 허다했고요. 손님들 오시면 이야기 들어야 하고 또 그 앞에서 소리를 시키시니까 그때는 스트레스였는데, 어느덧 보니 저도 모르게 그렇게 살고 있더라고요. 혼자 있으면 친구들 불러서 같이 놀고 음악하고 그런 것들을 좋아하는 제 모습을 보면서 아버지를 닮을 수밖에 없구나, 멋스럽게 노는 것 또한 내가 배워야 할 것이구나 싶었습니다.
또 아버지께서 농사도 짓고 한복 염색도 하고 그러시거든요. 무대에서는 소리만 하시는 분이지만 무대 밖에서는 정말 다양한 것들을 하세요. 아버지가 하시는 것 자체가 특이하기도 했고, 또 굉장히 엄하셔서 제가 혼났던 경험담 같은 것들을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면 다들 재미있어하고 그랬어요.
인사
윤영진 소리꾼은 아버지로부터 느끼는 부담과 압박감을 짊어지고 있지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계속 시도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부자가 소리를 멈추지 않는 동력은 서로를 경쟁자로 보며 더 발전하려는 노력에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아버지께서는 제가 우러러 보기를 바라시면서 또 넘어서기를 바라시니까, 저희는 평생 그런 관계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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