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영주는 선비의 고장이라고 하잖아요? 이름에 걸맞게 근처에 유서 깊은 장소들이 참 많아요. 소수서원, 부석사 무량수전 같은 고적이 많죠. 옆 동네는 안동이고요. 제가 다회에 쉽게 빠져들 수 있었던 것도 지리적인 특성이 반영된 것 같아요. 전통적인 것들을 익숙하게 접하고, 귀담아들을 수 있는 환경에서 자랐던 거죠.
자라는 동안 아버지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막내라 유난히 귀여워하신 것 같아요. 무릎에 앉혀놓고 옛날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셨거든요. 호랑이 이야기, 도깨비 이야기, 큰 집이 있는 순흥과 관련된 이야기 같은 것들이요. 이야기와 관련된 고적이 있으면 데려가기도 하시면서요. 제가 다회에 대한 열망이 이글거렸을 때도 아버지는 늘 응원해주셨어요. ‘적극적으로 해라. 늦지 않았다. 얼마든지 지금부터라도 공부해라.’ 정신적인 지주셨죠.
인사
이 모든 걸 해낼 수 있었던 건 사명감 때문이었어요. 우리 스승님이 한국에서 유일하게 광다회의 명맥을 잇던 사람이고, 나는 그분께 배운 사람이니까 맥이 끊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사람 일이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요. 내일 죽을지도 모르고요. 선생님께 배우고, 제가 체득한 것들을 전부 기록으로 남겨서 국회 도서관에 자료를 보관하고 죽자는 마음으로 했어요. 기록은 제가 떠나도 남아있잖아요. 그래야 그 이후에 누군가 또 다회에 마음을 빼앗겨도 공부할 것이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