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할 수 있는 일을 그냥 해요.
서울특별시 강남구 봉은사로 406
#혼백매듭 #꾸준함
만남일_2024.02.22 | 에디터_설지희, 최아현 | 사진_손하원
만남
노력하는 이가 천재를 이길 수 없고, 천재는 즐기는 이를 이길 수 없다지만 실은 노력하는 일이 제일 어렵다. 길을 찾지 못해 헤매느라 이것 저것을 배웠다고 말하지만 실은 무언가를 해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며 호기심을 잃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가 헤매온 과정은 앞으로 걸을 길에서 건네질 도움의 초석임이 분명해 보였다. 자신의 이야기를 시종일관 담담하고 묵묵한 자세로 내뱉는 매듭장 김시재를 만났다.
사람
1976년생이고 서울 용산구에서 태어나 서울에 쭉 살았어요. 어릴 적을 떠올리면 기억나는 것 중의 하나가 지루하다는 감정이에요. 6학년쯤이었나? 햇볕을 쬐면서 학교 담벼락을 따라 걸으며 집에 가는 길이었어요. 타박타박 걸으면서 ‘너무 지루하다. 언제쯤 19살이 될 수 있을까? 언제 독립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을 했던 게 기억나요. 맏이였고 동생들을 당연하게 돌보던 때였거든요. 늘 어른같이 굴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요. 동네 아저씨가 저랑 제 동생들을 보고 어미 병아리가 새끼 병아리들 데리고 돌아다니는 것 같다는 이야기를 종종 하셨으니까요. 생각해 보니 어미 병아리가 어디 있어요?
솜씨
국립무형유산원 개원 10주년 창의공방 상주작가 전시 작품은 도전 그 자체였어요. 그렇게 큰 작품을 만드는 건 처음이었거든요. 생각한 것보다 재료와 시간이 훨씬 많이 드는 일이었어요. 몰랐으니까 용감하게 시작했던 것 같아요. 워낙 커서 하루에 4cm씩밖에 못 만들었어요. 이것 때문에 제주에 계신 탕건장 전승교육사 김경희 선생님께 가서 망 뜨는 것도 따로 배워왔어요. 매듭에서 망을 뜰 때는 처음부터 끝까지 끊기지 않는 실 한 가닥으로 망을 떠요. 끊기면 아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죠. 그런데 규모가 커지니까 한 줄로는 할 수가 없잖아요. 그래서 연결하는 걸 배워야겠다고 생각한 거죠. 그때 탕건장 선생님의 기술을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렇게 배운 기술로 작품을 진행했어요.
청주 공예 비엔날레에서 선보인 혼백매듭은 사람과 영혼, 삶과 죽음을 연결해 주는 매듭이죠. 이걸 주제로 작품을 만들었더니 제가 염세적인 거 아니냐고 오해하시기도 하는데 정반대에요. 저는 삶을 사랑하거든요. 그렇지만 삶을 사랑하기 때문에 죽음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믿어요. 오히려 놀랐어요. 사람이 한 번도 죽음을 염두에 두지 않고 살 수가 있나? 태어난 모든 사람이 죽는데 이걸 빼고 삶을 말할 수 있나? 이런 의문이 들더라고요. 이런 저의 고민을 혼백매듭을 통해 표현해 보고 싶었어요.
매듭은 매달려 있을 때 가장 아름다워요. 박물관 같은 곳에서 전시할 때 꼭 바닥에 눕혀두잖아요? 그게 항상 아쉬웠어요. 매듭은 걸려서 매달리고 흔들릴 때 더 예쁜데 그 예쁨이 누워있으면 보이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제 전시에서는 매듭을 매달아서 전시할 방법을 고민하는 것 같아요. 공중에 매달아보기도 하고, 울퉁불퉁한 도자기 위에 얹어서 흘러내리는 것처럼 비치해 보기도 하고요. 여전히 이것저것 시도하면서 새로운 표현 방식을 찾기 위해 애쓰고 있어요.
지역
어릴 때는 제가 당연하게 그림을 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4살 때부터 동네 미술학원엘 다녔는데 선생님이 ‘너는 훌륭한 화가가 될 거야.’라고 한 이야기가 뇌리에 깊게 박혔거든요. 그래서 다른 생각을 못 했어요. 훌륭한 화가가 되어야 하니까요. 실은 제가 그림을 잘 그리기보다는 다른 능력이 좋았던 거일 수 있잖아요. 눈이 좋았다거나, 관찰력이 비상했다거나. 그런데 그게 너무 깊게 제 속에 박혀서 다른 진로를 생각해 보질 못했어요. 그대로 예중, 예고로 진학해서 동양화를 전공했죠.
인사
계획은 별로 세우지 않으려고 해요. 이것저것 세운 계획이 잘 되지 않기도 했고요. 이제는 그 계획을 세우느라 스트레스를 받을 바에 그냥, 하루하루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어요. 이왕 하는 일, 조금 더 보람 있게, 열심히 해내고 싶어요. 멀리 있는 일까지 특별히 계획을 세우면 너무 고될 것 같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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