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전주시

양장도 한복도 다 하지만 루비한복의 특기는 깨끼바느질이랍니다

 전북 전주시 완산구 풍남문4길

루비한복  오정자


직   업   한복 명장(깨끼바느질)






#전주 #루비한복

#한복 #깨끼바느질 #명장

에디터_류영관

사진작가_오태풍 

양장도 한복도 다 하지만 루비한복의 특기는 깨끼바느질이랍니다


 전북 전주시 완산구 풍남문4길

루비한복  오정자


직 업   한복 명장 (깨끼바느질)



#전주 #한복 #명장

#루비한복 #깨끼바느질

에디터_류영관

사진작가_오태풍

※이 기사는 도서 〈고물자골목재생사업 아카이빙_루비한복〉(2018)에 실린 루비한복 오정자 인터뷰 일부를 발췌하여 작성되었습니다. (조성실 에디터 작성|오태풍 사진작가 촬영)

※ 2024년 진행한 〈로컬브랜딩랩1기〉 참여 장인으로 새로 윤문하였습니다. (류영관 에디터) 


만남


전주 원도심의 오래된 골목에 늦은 밤, 불이 켜진 한복집이 있었다. '루비한복'이라고 간판을 단 작업실에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이 미싱을 하고 계셨다. 일에 집중하시는 모습에 가게 밖에서 한참을 지켜보았다. 가게 문을 조심스레 열자 이내 오정자 장인이 환한 얼굴로 맞아주셨다.


사람


전주 ‘루비한복’에서 깨끼바느질을 하는 오정자예요. 제가 어릴 때부터 이걸(미싱)좋아하기는 엄청나게 좋아한 사람이었나 봐요. 한 열두 살 때, 엄마가 밤에 다리미질한 것을 꿰매고 있었어요. 낮에는 일해야 하니까 밤에 가족 옷을 꿰매는데, 홈질 같은 것을 해줬어요. 엄마가 “여기서 여기는(네가)좀 해라.”하셨는데, 아마 당시에도 제가 그냥 못 쓰게는 하지 않았으니까 시켰을 거예요.


솜씨


시골에서 개성 양재학원에 다녔는데, 그게 조금 약한 것 같아서 조금 더 배워야겄다 하고 전주로 나와서 간 곳이 뉴스타일 양재학원이었어요. 근데 그 학원이 상당히 수준 높은 학원이었어요. 양재학원 경험 있는 사람이나 고등학교 이상 나온 그런 사람을 모집하더라고요. 원장님이 초등학교 선생님 하던 분인데 양장을 배운 후 전주에 와서 뉴스타일 양재학원을 개업했을 때에요. 그래서 거기서 다닐 때 굉장히 옹골지게 많이 배웠어요.


원래 양장을 해서 ‘라사점’에 원단 뜨러 갔다가 들린 한복집 ‘백합주단’ 진열장에 깨끼옷이 걸려 있었는데, 거기서 그냥 오랫동안 머무르고 봤어요. ‘이걸 어떻게 박았을까? 저걸 어떻게 박았을까?’ 근데 나중에 배우니까 방법을 알겠더라고요. 곱게 나오게 하려면 연습하는 수밖에 없었어요. 그렇게 해서 한복을 하게 됐어요. 그 때가 마흔살이나 마흔다섯살 그렇게 될 거예요.

장소


금암동으로 합동 배차장을 옮기기 전에는 여기에 배차장이 있어서 중심가였어요. 고산에 살 때 제가 고산에서 차를 타고 오면 여기서 내렸어요. 그러다 보니 이 골목이 익숙해져 이곳에서 가게를 하게 됐어요.


그리고 옛날 ‘형제상회’ 사장님이 저보고 자꾸 여기로 나오라고 하는 거예요. 가까운 데로 나와야 자기 편하니까요. 그 아저씨는 저 처녀 때부터도 알았는데, 놀지 않게 자기가 일거리대줄테니까나오라고 했어요

인사


이제는 슬슬 체력이 부쳐 작업실을 나오는 날도 부쩍 줄어들고 힘이 들어 ‘루비한복’을 정리하려고 한다는 오정자 장인. 오정자 장인은 이 공간에 바느질이나 미싱을 할 줄 아는 청년이 들어와 뭐라도 해주길 바라셨다. 그렇게 공간과의 관계가 끊이지 않고 이어져 연결되는 게 선생님의 작은 소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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