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전주시

가치를 보존하는 일

전북 전주시 완산구 풍남문4길 30

보천당  이형석


직   업   표구사

시작일   1973년

이메일   -

운   영    연락 후 방문



#보천당 #표구사

#고미술거리 #복원

에디터_양소영

사진작가_김승훈

가치를 보존하는 일


 전주시 완산구 풍남문4길 30

보천당  이형석


직   업   표구사

시작일   1973년

이메일   -

운   영    연락 후 방문


#보천당 #표구사 #고미술거리 #복원

에디터_양소영

사진작가_김승훈

※ 이 기사는 잡지 〈도심살림〉에 실린 보천당 이형석님 인터뷰 기사 일부를 발췌하여 작성되었습니다. 

※ 2024년 진행한 〈로컬브랜딩랩 2기〉 참여 장인으로 새로 윤문하였습니다. (양소영 에디터|김승훈 사진작가 촬영)




만남


전주 고미술거리에 자리잡은 보천당 표구사. 보배 ‘보’(寶)에 하늘 ‘천’(天이)라는 이름처럼, 그 의미를 새겨 57년간 한결같이 그림과 서예 작품을 다루고 있다. 긴 세월동안 한 자리를 지키며 전통을 이어온 그의 표구점은 오래 쌓인 시간만큼이나 무게감이 느껴졌다. 매일 아침 8시면 어김없이 가게 문을 여는 이형석 대표를 만났다.


사람


원래는 그림을 좋아해 화가가 되고 싶었지만, 어린 나이에 먹고살기 위해 선택했던 길이 표구였다. 열 여덟 즈음 어린 나이에 시작한 표구 일은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기술을 배우는 여정이었다. 그 과정에서 점차 표구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커져갔다. 

이형석 대표는 다양한 스승 밑에서 기술을 익혔다. 집에서 쌀밥 짓는 것만 보고 따라하면 안 되듯, 여러 집의 비법을 배우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한 곳에서만 배워서는 안 되는 거거든요. 전주 말고도 서울서도 배우고, 부산, 마산에서도 배웠어요. 여러 곳에서 배운 종합적인 기술을 보유하고 있죠. 집에서 우리 어머니 쌀밥 짓는 것만 보고 따라하면 안 되잖아요. 쌀밥에 콩이랑 현미, 찹쌀도 섞어보고. 진밥도 해보고 고두밥도 해보고. 다른 집 가서 밥도 먹어보고, 저 집이 잘한다고 하면 왜 맛있는지 고민도 해보고 해야죠.”


솜씨


표구는 그림이나 서예 작품에 종이나 비단을 발라 족자, 액자, 병풍 등을 꾸미는 일이다. 이형석 대표의 특별한 점은 전국 각지를 돌며 터득한 다양한 기술과 경험이다. 그는 표구의 핵심은 무엇보다 배합에 있다고 강조한다. 그동안의 경험과 노하우가 고스란히 담긴 그의 기술은 책으로 정리되어 있었고, 작업 과정은 동영상으로도 기록되어 있다.


 "풀 쑤는 거, 더 오래 보관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게 가장 중요해요. 풀 쑤는 법은 내가 제본해서 다 정리해놨어요." 


전주박물관의 주요 작품들과 많은 예술가들의 작품이 그의 손을 거쳐갔다. 특히 4m 80cm에 달하는 객사 풍패지관의 표구를 대표작으로 꼽는다.


“객사 풍패지관 그것이 4m 80인가? 당시에는 아무도 하지 못한 작업이었어요. 판이 상해서. 배접하고 뒤에다 종이를 입혀야 하는데 내가 배접을 했어요. 그게 지금도 박물관에 걸려있어요.”

지역


처음에는 전주 중앙표구사에서 일을 시작해 73년부터 팔달로에서 표구사를 운영하다가 2013년 현재의 고미술거리로 자리를 옮겼다. 


"예전에는 전주에만 70~80개의 표구사가 있었는데, 지금은 18곳 정도만 남아있어요. 표구는 전통미술을 살리고 보존하기 위해서라도 꼭 필요한 기술입니다.“

인사


5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결같이 표구 일을 해온 이형석 대표. 표구에 대한 관심이 점점 사라지는 요즘, 그는 여전히 매일 아침 정성스레 작품과 마주한다. 그동안 수집한 기록물과 체득한 노하우를 후세에게 전달하는 것이 그의 마지막 숙제다. 


”내 손길이 닿은 작품들이 더욱 아름다워질 수 있도록 하는 거, 그게 내 성장이고, 꿈이죠. 저는 이 일을 번성할 때부터 오래 해왔으니 그동안 수집한 기록물이나 체득한 기술적 노하우를 잘 정리해서 후세에게 전달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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