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고향 생각이야 떠오르는 게 많죠. 제가 자란 동네가 정읍시 태인면 증산리에요. 어릴 때는 동네 할머니들 사랑방에서 보살핌 받으며 컸어요. 할머니들께서 한 번 회동을 했다 하면 보통 8명, 10명 모여요. 자연스레 할머니들 부르는 흥타령이나 목화씨 까는 거, 씨앗 놀리는 거 보고 자랐죠. 그때는 목화 농사 지은 걸로 이불 만들어서 시집, 장가보내던 시절이었으니까요. 호남가 부르면서 서당을 다녔죠.
참, 제가 아버지 나이 예순에 태어났어요. 완전 늦둥이였죠. 게다가 6.25 전쟁이 벌어진 게 두 살 때예요.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학교에 보내기에는 생활이 어려우니 대신 한약사가 되라고 동네 서당에 보내셨죠. 그때도 약 짓는 사람은 존경받았거든요. 『천자문千字文』부터 『추구推句』, 『동몽선습童蒙先習』, 『명심보감明心寶鑑』…. 가야금 만드는 일에 흥미가 생겨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 대략 일곱 권 정도 배웠어요. 그때 배운 한문 공부가 제 삶의 단단한 토양이 됐죠.
인사
인터뷰를 하는 동안 가장 마음에 꽂힌 단어는 ‘책임’이었다. 유년 시절 내내 한문 공부로 사람됨을 배웠다는 그에게서 단단한 심지를 보았는데 그 중심에 있는 단어가 ‘책임’이라고 느껴진 탓이었다. 즐거워 시작한 일인 동시에 오랜 세월 외롭고 고단했을 작업을 책임지고 이어온 그의 깊은 미소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