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전주시

좋은 악기에는 음의 색깔이 있어요

 전북 전주시 덕진구 호반2길 10

국가무형유산 악기장 보유자 고수환


직 업   악기장

운 영   문의 후 방문

           




#가야금 #책임 #조율

만남일_2025.04.16

에디터_최아현 | 사진_이정준

좋은 악기에는 음의 색깔이 있어요


전북 전주시 덕진구 호반2길 10

국가무형유산 악기장 보유자  고수환


직 업   악기장

운 영   문의 후 방문 




#가야금 #책임 #조율

만남일_2025.04.16 | 에디터_최아현 | 사진_이정준

만남


올해 들어 유독 변덕스럽던 봄이 아침부터 청명했다. 볕이 쏟아졌고 기분 좋은 바람이 거리를 감쌌다. 덕분에 동네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격렬한 환대를 받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산듯한 날씨 덕에 들떴던 마음이 이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전주국악기에 들어서자 사방에 자리한 악기들이 나를 달랬기 때문이었다. 6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순수하게 가야금 만드는 일을 사랑한 악기장 고수환을 만났다.


사람


1949년 9월생 고수환입니다. 가야금을 한 지는 60년 되었네요. 1979년에 전북무형유산, 2023년에 국가무형유산으로 인정됐어요. 내 일이 좋아서 하고 있고, 스스로 한 일에 책임지면서 남에게 피해 끼치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살아온 것이 오늘날의 결과를 만들었다고 생각해서 만족해요. 이만하면 잘 살아왔다, 잘 사는 것이다. 


제가 마음 먹은대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오는 동안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면 부인이죠. 그 시절에도 그랬어요. 가야금 만들어서 어떻게 밥 먹고 사느냐고. 그 힘든 시간을 버텨서 나를 보살피고, 밀어주고, 뒷바라지 해 준 사람이에요. 처 없이는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어요. 그래서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던 나를 선택해 준 부인을 제일 고맙게 생각해요. 


솜씨


악기는 외형을 만드는 게 아니고 소리를 만드는 거예요. 반드시 나와줘야 할 음의 색깔이 있는 거죠. 때문에 악기를 만드는 사람은 연주자가 원하는 연주를 할 수 있게 책임져야 해요. 그래서 서울에 있을 때, 공방에 오시던 황병주 선생님께 가야금 연주를 배웠어요. 연주도 못하면서 악기를 만드는 것은 모방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만드는 동시에 연주하는 걸 배웠으니까 자연스레 소리에 집중할 수밖에 없어요. ‘음은 어디에서 만들어지나?’, ‘이 소리가 나는 데 무엇이 작용하고 있나?’ 이런 것들을 유기적으로 이해하는데 큰 배움이 됐죠.


울림판은 오동나무를 써요. 어느 부위는 어떻게 만들고, 어디는 두껍게 만들고, 어느 각도로 만들고…. 이런 디테일이 중요해요.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몸통판을 거칠게 만드는 거예요. 가야금은 안족(雁足)1)을 움직이면서 조율하잖아요. 거친 몸통판은 조율을 하더라도 안족이 흔들리지 않고 바닥에 걸릴 수 있게 하는 역할을 해요. 그래야 12줄 안에서도 누르는 힘에 따라, 연주 방식에 따라 다양한 층위의 소리를 만들어낼 수 있어요. 그걸 농현2)이라고 불러요. 소리를 다양하게 내고도 버틸 수 있게, 음이 변하지 않게 두께를 잡을 줄 아는 것. 그게 비법인 거예요.

지역


고향 생각이야 떠오르는 게 많죠. 제가 자란 동네가 정읍시 태인면 증산리에요. 어릴 때는 동네 할머니들 사랑방에서 보살핌 받으며 컸어요. 할머니들께서 한 번 회동을 했다 하면 보통 8명, 10명 모여요. 자연스레 할머니들 부르는 흥타령이나 목화씨 까는 거, 씨앗 놀리는 거 보고 자랐죠. 그때는 목화 농사 지은 걸로 이불 만들어서 시집, 장가보내던 시절이었으니까요. 호남가 부르면서 서당을 다녔죠.


참, 제가 아버지 나이 예순에 태어났어요. 완전 늦둥이였죠. 게다가 6.25 전쟁이 벌어진 게 두 살 때예요.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학교에 보내기에는 생활이 어려우니 대신 한약사가 되라고 동네 서당에 보내셨죠. 그때도 약 짓는 사람은 존경받았거든요. 『천자문千字文』부터 『추구推句』, 『동몽선습童蒙先習』, 『명심보감明心寶鑑』…. 가야금 만드는 일에 흥미가 생겨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 대략 일곱 권 정도 배웠어요. 그때 배운 한문 공부가 제 삶의 단단한 토양이 됐죠.



인사


인터뷰를 하는 동안 가장 마음에 꽂힌 단어는 ‘책임’이었다. 유년 시절 내내 한문 공부로 사람됨을 배웠다는 그에게서 단단한 심지를 보았는데 그 중심에 있는 단어가 ‘책임’이라고 느껴진 탓이었다. 즐거워 시작한 일인 동시에 오랜 세월 외롭고 고단했을 작업을 책임지고 이어온 그의 깊은 미소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1) 거문고, 가야금, 아쟁 따위의 줄을 고르는 기구. 단단한 나무로 기러기의 발 모양과 비슷하게 만들어서 줄의 밑에 괴고, 이것을 위아래로 움직여 줄의 소리를 고른다.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2) 국악에서 현악기를 연주할 때에, 왼손으로 줄을 짚고 흔들어서 여러 가지 꾸밈음을 냄. 또는 그런 기법. (출처: 표준국어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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